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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손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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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천자칼럼] 손글씨
    교보문고 광화문점 한가운데에 있는 손글씨 코너. 글을 쓰는 사람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시 한 편, 밥 한 끼’라는 콘셉트로 엽서에 시 한 편을 쓸 때마다 장당 200원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자동으로 기부하는 일이어서 모두들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손글씨를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와지는데 남까지 도울 수 있다니 더 좋다”고 말한다.

    얼마 전 열린 ‘제1회 교보 손글쓰기 대회’에는 전국에서 2275명이 응모했다. 손글씨 인기를 타고 만년필 등 필기도구 판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만년필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 증가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각의 손글씨가 다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실험 결과가 눈길을 끈다. 연구팀은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각각 노트북과 공책을 나눠줬다. 30분짜리 강연 후 주의력을 흐트러뜨리는 질문을 던진 뒤 강연 내용을 물었다. 간단한 사실을 묻는 것에는 두 그룹이 비슷하게 답했다. 그러나 맥락을 묻는 질문에는 차이가 컸다. 공책필기 그룹의 성적이 노트북보다 훨씬 높았다. 1주일 뒤 다시 실험을 했을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사실을 기록할 때는 노트북이 좋지만, 복잡한 개념이나 맥락을 이해하는 경우에는 펜으로 쓰는 게 낫다는 게 결론이다.

    손글씨를 잘 쓰면 대학입시나 취업에도 유리하다. 깨끗하게 잘 쓴 글씨는 채점자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 글씨체가 중요하다는 조언을 듣고 뒤늦게 글씨교본을 사 연습하는 취업준비생도 있다고 한다. 젊은 교사 중에는 공개수업 때 ‘다 좋은데 판서(板書) 연습 좀 했으면 좋겠다’는 지적을 받고 민망해하기도 한다.

    학자들은 손글씨가 일상 언어활동의 수단일 뿐 아니라 활자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다양한 글씨체가 많은 사회일수록 이를 활용한 서체와 문화가 다채롭게 발달한다고 한다. 현대의 출판이나 디지털 매체에 사용되는 글꼴 중에도 손글씨체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영문 서체로 널리 쓰이는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 개러몬드(Garamond) 등도 손글씨체에 뿌리를 둔 것이다.

    필체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정성 들여 손글씨를 쓰면 집중력과 기억력도 좋아진다. 오늘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과 한글박물관이 한글 손편지 쓰기 공모전 시상식을 여는데, 여기에도 6900여명이나 응모했다니 가히 손글씨 시대의 부활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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