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돌아온 '객주'…"돈의 가치와 의미 보여줄 것"
“이익을 따지는 사람들은 더 큰 이익 앞에서 등을 돌리게 마련이다.”

조선시대 조정의 조달 품목을 취급하는 육의전 대행수 신석주(이덕화 분)는 중간도매상인 객주 김학준(김학철 분)이 경매에 부친 대형 여각을 헐값에 손에 넣은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각은 조선 후기 연안 포구에서 상인들의 숙박, 화물 보관·위탁판매·운송 등을 맡아보던 상업 시설이다.

그는 김학준의 목줄을 쥔 개경 사또에게 높은 벼슬자리를 제안했다. 다른 객주들을 파멸로 몰아넣은 가해자 김학준이 더 큰 힘에 농락당하며 피해자로 전락한다. 실의에 빠진 김학준은 기생 천소례(서지희)로부터 힘을 합치자는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천소례는 김학준에게 파멸당한 객주의 딸인데, 복수를 위해 원수와 한 배를 타기로 결심했다. 그 즈음, 천소례의 동생 천봉삼(장혁)은 병고에서 살아남아 떠돌이 보부상과 돌아다니며 상술을 배운다.

김주영의 장편소설 ‘객주’가 드라마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달 23일 첫 방송을 탄 KBS 2TV 수·목 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이하 ‘장사의 신’)다. KBS가 소설 ‘객주’를 드라마화한 것은 1983년 이후 32년 만이다.

드라마는 진정한 상도(商道)를 실천한 조선 제일의 거상 천봉삼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담아낸다. 몰락한 객주의 후계자 천봉삼이 시장의 여리꾼(상점 앞에 서서 손님을 끌어들여 물건을 사게 하고 주인에게 삯을 받는 사람)으로 시작해 상단의 행수(우두머리)와 대(大)객주를 거쳐 거상으로 성공하는 이야기다.

연출을 맡은 김종선 감독은 “예전의 드라마 ‘객주’가 조선후기 생활상이나 보부상의 애환을 그린 데 비해 ‘장사의 신’은 이 시대의 화두인 돈의 가치와 의미를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선의 19세기 말은 상공인들이 활발한 거래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발돋움하던 시기다. 상인의 물건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를 거간하던 중간상인인 객주와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을 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했던 보부상이 상업 활동의 주체였다.

드라마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상도의 철학을 펼쳐낸다. 소가죽 밀매의 유혹을 뿌리치는 천오수(김승수 분)는 “세상에 힘 안 들이고 돈 버는 일도 있소? 그러니까 못 한단 거요!”라고 거절한다. 그는 “장사에도 지켜야 할 염치와 도리가 있네. 그걸 상도라 하는 걸세. 상도! 자네가 밀거래로 우피를 싼 값에 넘겨버렸으니, 정당히 세금 내고 책문 거래허가증을 얻은 우피 객주는 어찌 되는가?”라고 일갈한다.

하지만 천오수 가문은 간계로 몰락한다. 천오수는 “자네 지옥을 본 적 있나? 파산한 객주가 바로 지옥일세”라고 말한다. ‘예언’대로 천오수의 자식들인 천소례와 천봉삼은 지옥 같은 현실에 떨어진다. 그들이 어떻게 지옥에서 탈출할지 궁금해진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