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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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發) 약값 논쟁이 국내 증시로 옮겨와 제약·바이오주(株)를 흔들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선 후보가 약가 인하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나스닥지수의 바이오주 주가가 급락했고, 이 여파는 국내 제약·바이오주에도 고스란히 전이됐다.

증시 전문가들은 제약·바이오주의 경우 가뜩이나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평가) 부담이 높았던터라 이번 약값 논쟁을 빌미로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미 증시, 나스닥 바이오지수 연일 급락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지수의 바이오·테크놀로지(기술)주 지수는 5% 가까운 급락세를 나타냈다. 이는 지난 8월 24일 이후 최대 낙폭이다.

이날 바이오주를 끌어내린 건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고가약에 대한 '한마디'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약값이 폭리를 취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며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클린턴 후보가 트위터를 통해 분노를 표출한 건 기존 치료약을 하루 사이 50배나 높여 폭리를 취하는 제약사들의 횡포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1953년 개발된 말라리아 치료제 '다라프림' 가격은 지난 8월 소유권이 새 주인에게 넘어간 뒤 하루 만에 13.50달러(한화 약 1만6000원)에서 750달러(한화 약 88만4000원)로 급등했다.

미국의 지난해 처방 지출액은 희귀질환 치료제 등 고가의 바이오 약품 처방 증가로 전년대비 13.1% 급증한 상태다. 이는 지난 10년 사이 증가율로는 최고치.

클린턴 후보는 이에 따라 만성질환자의 약 처방액 한도를 월 250달러로 제한하고, 소비자에 대한 약광고비의 세금감면 제도를 철폐하는 등의 약가 인하 관련 공약을 내놓았다.

이후 나스닥지수의 바이오주 주가 하락이 지속된 건 물론이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생명공학·의약주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 25일~28일까지 나흘 동안 S&P500지수에 올라있는 생명공학주는 8% 급락했고 의약주도 5.8% 주저앉았다.

미국 제약협회(PhRMA)는 클린턴 후보의 공약이 각종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제한하고 향후 신약 개발 건수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고 반박했다.

◆ 코스피, 의약지수 3% 하락…코스닥도 약세

미국에서 시작된 이같은 약값 논쟁은 추석 연휴를 마치고 개장한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날 오후 1시7분 현재 유가증권시장에서 의약품업종 지수는 2.86% 떨어져 전 업종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보이고 있다.

개별 종목으로는 경보제약이 19% 가까이 밀렸고 유유제약도 10% 이상 하락했다. 대원제약, 녹십자홀딩스, 부광약품 등도 3~8%씩 떨어졌다.

미국 바이오주에 투자하는 '코덱스 미국 바이오'(합성)은 17% 이상 하락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제약업종 지수도 2.83% 떨어졌다. 개별 종목으로는 셀트리온이 2.58% 하락했고 메디톡스도 1.66% 밀렸다. 코오롱생명과학씨젠, 젬백스 등도 일제히 3~4%씩 내렸다.

정보라 동부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약가 규제가 시행된다면 제약시장은 위축되고 신약 개발회사들의 수익성은 나빠질 수 있다"며 "바이오가 저금리와 넘쳐나는 유동성의 대표 수혜주였던 만큼 대외 불확실성과 맞물려 조정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약가 규제가 법제화될 수 있을 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미국 이슈로 인해) 국내 바이오주 주가도 당분간 조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은택 SK증권 연구원은 "이번 클린턴 후보의 약가 규제 이슈는 2013년 소발디(간염치료제) 약가 조사와 비슷하다"면서도 "규제 가능성이 커지면서 최근 분위기는 2013년보다 더 강하다"고 분석했다.

일부에서는 직접적인 약가 규제는 어려워도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처방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로 약가 인하를 유도하는 방법은 가능할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이 경우 국내 바이오시밀러 관련주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공적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 메디케어를 통해 바이오시밀러 처방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와 정부 지원 확대 등은 가능할 것"이라며 셀트리온, 삼성물산, 이수앱지수 등을 선호주로 제시했다.

권민경 한경닷컴 기자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