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컨트리 리포트] 중국 성장 걸림돌 15만 국유기업, 합병·민자유치로 '새 날개' 달까
“불사조는 자기 몸을 불태워 다시 젊은 모습으로 날아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이 지난 7월 중국 동북지방을 시찰하면서 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사조’란 중국의 국유기업을 지칭한다. 지난 7월이면 상하이증시 급락으로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하던 국유기업 개혁방안이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던 때였다. 이런 예상을 깨고 시 주석은 중국의 국유기업을 불사조에까지 비유하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로부터 약 2개월 뒤인 지난 13일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 개혁 심화에 관한 지도의견’을 발표하며 국유기업 개혁에 일단 시동을 걸었다.

중국 경제 발목 잡는 국유기업

국유기업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가 고속성장하는 과정에서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중국이 투자주도형 성장모델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국유기업은 에너지 철강 화학 통신 항공 등의 산업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중국 경제의 국유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졌다. 국유기업들의 총 매출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79.6%(2013년 기준) 수준까지 상승했고, 국유기업의 납부 세금도 전체 재정수입의 28.5%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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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주도형 성장모델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국유기업은 중국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전락했다. 중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과잉공급, 과잉재고, 과잉부채 등 ‘3대 과잉’ 문제의 진원지가 국유기업이었다. 과잉공급과 과잉재고는 국유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국유기업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2006년까지 민영기업을 웃돌았는데 지난해에는 6.7%로 민영기업(10.1%)의 3분의 2 수준으로 하락했다.

반면 국유기업의 부채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중앙 국유기업의 부채는 전년 동기 대비 8.9% 증가한 37조위안을, 지방 국유기업은 13.7% 늘어난 34조위안을 각각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국유기업 중 하나인 중장비업체 중궈얼중(CNEG)은 오는 28일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에 대한 이자를 갚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부패사정으로 개혁반대 세력 제압

국가 전략산업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까지 문어발식 확장을 한 것도 국유기업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진장호텔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등 450개국 수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 숙소로 선택한 중국 대표 호텔 브랜드다. 광밍식품은 4개의 상장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린 중국의 대표적인 식료품업체다. 문제는 두 기업 모두 국유기업이라는 데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약 15만5000개의 국유기업 중 51%에 달하는 8만개 정도가 국가 전략산업과는 무관한 호텔 건설 쇼핑몰 레스토랑 등의 업종에 분포돼 있다”며 “이 같은 국유기업의 존재는 중국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중국에서 국유기업 개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요 개혁 의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1998년 진행된 대대적인 국유기업 구조조정 이후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지 못했다. 국유기업과 공생관계에 있는 고위 정치인 및 관료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시진핑 정부는 2013년 10월 열린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국유기업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유기업 개혁방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내부 반발에 직면했다. 이에 감찰·사정을 총괄하는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지난 2월 26개 중앙 국유기업에 순시조를 파견해 대대적인 부패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우전팡 중국해양석유공사 부회장, 랴오융위안 페트로차이나 회장, 쉬젠이 이치자동차 회장 등이 부패 혐의로 낙마했다.

글로벌 시장 겨냥 국유기업 대형화 주목

지난 13일 중국 정부가 발표한 국유기업 개혁방안은 일종의 ‘총론’이다. 각론은 중국 정부 각 부처들이 후속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혁방안에서 혼합소유제 개혁에 대한 일정표가 제시되지 않았고, 국유기업에 대한 공산당의 지배력이 확고하게 유지될 것임을 명시했다는 점을 들어 시진핑 정부의 개혁 의지가 후퇴했다고 평가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번 국유기업 개혁방안이 실행 단계에 접어들면 중국 경제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선 같은 업종에 속한 국유기업 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는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 기업의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국유기업 개혁안이 발표되기 사흘 전인 지난 10일 글로벌 6, 7위 해운업체인 중원그룹과 중국해운 산하의 상장사 4곳은 중대사항 계획을 이유로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시장에서는 두 회사가 조만간 합병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은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철도 원자력발전소 통신 등 중공업분야의 세계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며 “국유기업 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는 중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겨냥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혼합소유제 개혁을 통한 민간자본 유치는 중국 국유기업들의 재무 건전성 및 경영 효율성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중국 5대 국유상업은행 중 정부 지분이 가장 낮은 교통은행은 이미 지난 6월 정부 보유 지분 일부를 민간에 매각하는 혼합소유제 개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상하이 증권가에서는 중국의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가 최근 공상은행과 건설은행의 주식을 매각한 것을 근거로 이들 은행도 혼합소유제 개혁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도이치뱅크는 그러나 지분매각 이후에도 중국 정부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혼합소유제 개혁에 민간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