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 대한노인회장은 “국가 재정이 빠듯한데 노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복지를 챙겨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이심 대한노인회장은 “국가 재정이 빠듯한데 노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복지를 챙겨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대한노인회는 최근 열린 정기 이사회에서 노인 기준 연령(현재 만 65세) 상향을 공론화하자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37명 만장일치였다. 노인 스스로 복지 혜택을 받는 노인 수를 줄이자고 나선 것이다. 이 같은 결정 뒤에는 이심 대한노인회장(77)의 오랜 고민이 있었다. 급격한 고령화로 복지 재정 부담이 커지는 상황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전국 시·도 연합회 대표들을 불러 모았다. 이 회장이 노인 연령을 올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 노인이 먼저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데 공감한 것이다.

대한노인회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거느린 단체다. 한국의 만 65세 이상 노인은 658만여명. 이 중 노인회에 등록한 사람만 320만명에 달한다. 이 회장은 지난해부터 ‘부양받는 노인에서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으로’를 노인회의 핵심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노인들이 무조건 사회에 기대기보다는 먼저 기여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울 효창동 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이 회장을 만나 노인 연령 상향을 제안한 배경을 들어봤다.

▷노인 기준 연령 상향 문제를 공론화한 이유가 뭡니까.

“시대가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한국의 노인 기준 연령은 50여년 전 유엔에서 정한 걸 아직도 따르고 있습니다. 요즘 경로당에서 65세면 청년 취급을 받아요. 건강하고, 일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70세나 75세는 돼야 노인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고, 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엔에 가입한 230여개국 중 130여개국이 노인 연령을 올렸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도 먼저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사자인 노인회가 먼저 나서서 공론화에 대한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령을 올리면 복지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 문제를 최소화해야지요. 지금 65~69세인 사람이 168만명 정도 됩니다. 현실적으로 이들에게 주던 것을 한꺼번에 없앨 수는 없어요. 하지만 노인 기준 연령을 2년에 한 살씩 70세 이상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는 있지요. 10여년에 걸친 조정 기간을 갖는 것입니다. 사회적 반발을 줄일 수 있는 방식입니다.”

▷노인이 손해 보는 것 아닌지요.

“내 것만 찾아 먹겠다는 생각만 하다가는 모두가 죽습니다. 국가 재정이 빠듯한데 노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복지를 챙겨 달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국가 전체를 위해 노인들이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국민 인식이 변했고 고령화 속도도 빠른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노인 연령을 올리는 게 첫째고, 둘째는 노인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기초연금 20만원을 그냥 지원할 게 아니라 초등학교 교통안전 지킴이 활동 수당으로 지급할 수 있어요. 건강한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입니다. 일을 제공하는 게 생산적 복지예요. 노인 혜택을 그냥 포기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전엔 무조건 주던 것을 일자리와 연계하자는 것입니다.”

▷청년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닙니까.

“청년 일자리와 노인 일자리는 성격이 다릅니다. 청년들이 하는 일은 창의적이고 빠른 결단력이 필요하지요. 반대로 노인에게는 ‘내공’을 통해 천천히 풀어나가는 일이 잘 맞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요즘 집이 비어 있으면 택배회사들이 물건을 직접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럴 때 택배기사가 경로당에 물건을 놓아두고, 노인들이 시간에 맞춰 집에 옮겨줄 수 있다면 그게 일자리 창출입니다. 이런 노인 일자리들을 정책적으로 개발하면 돼요.”

▷건강 때문에 일하기 힘든 노인들도 있을 텐데요.

“운동하는 만큼 지원하는 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운동 시간당 1000원씩 주는 식으로.”

▷재정 부담이 크지 않겠습니까.

“언뜻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인이 운동을 통해 건강해지면 건강보험에서 나가는 돈이 줄어듭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국가 재정에도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비용이 들어가고,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일부 지역을 선정해 시범사업을 해볼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복지는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기초연금 지급 범위를 두고 한참 시끄러웠습니다.

“그때도 노인회는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에게 주지 말고 소득에 따라 지급 대상을 제한하자고 했어요.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매달 20만원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건 나라살림 거덜내는 선심성 공약이에요. 그런데도 여당 야당 모두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주겠다는 말을 쉽게 거둬들이지 못했어요. 계속 노인들의 눈치를 본 거지요. 그래서 내가 소득 하위 70%에게만 주자고 먼저 말해 여야 합의의 물꼬를 텃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요.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노인들을 많이 만나러 다녔어요. 노숙자는 무조건 보편적 복지를 원할 것 같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선별적 복지가 좋다고 해요. 나라 재정이 튼튼해야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그들이 제일 잘 알아요. 전국 노인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여론조사도 해봤습니다. 노인 대다수가 모든 노인이 아닌 소득 하위 70%에게만 기초연금을 제공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답했어요. 그때 확신이 생겼습니다. 요즘도 경로당을 돌아다녀보면 ‘20만원 받는 건 좋은데, 내가 이렇게 받아도 나라가 괜찮은 거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머지않아 노인 1000만명 시대가 옵니다.

“아직도 제대로 된 노인 전담 부처가 없어요. 보건복지부가 있지만 다른 업무가 많아서 노인 쪽에 집중할 여력이 없고, 담당 공무원도 노인 전문가가 아니지요. 노인회 입장에서는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노인 업무만 담당하는 노인복지청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노인 정책이 표류하지 않고 바로 섭니다. 132만명이 서명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어요.”

▷자세한 청원 내용이 뭔가요.

“10여개 부처에 흩어져 있는 노인 관련 예산을 노인복지청 한 곳에 모아 효율적으로 집행하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맞춤형 복지가 하나도 안 돼요. 예를 들면 건강보험공단이 노인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가 여기에 생활체육 사업을 더합니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 노인들은 높은 복지 수준을 누리는데, 그렇지 않은 곳은 형편없어요. 어떤 경로당엔 자전거 탈 사람도 없는데 정부가 자전거를 사다놔요. 그럼 필요없는 복지가 되는 거죠. 이런 것을 노인복지청에서 한꺼번에 관리하고 조정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같은 돈을 쓰더라도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게 되는 것이지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단계적으로 가야지요. 당장 내년에 청을 신설하고, 예산을 모아달라는 게 아닙니다. 우선 노인 관련 정책을 체계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본격적인 100세 시대가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매우 많아요. 경로당 시스템이 아직 열악합니다. 경로당의 위생 수준을 높이고 노인 교육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원격의료 모델도 자리 잡게 해야 하고요.”

▷원격의료가 필요한가요.

“노인들에겐 무척 중요합니다. 병원에 직접 가지 않고도 혈당 체크하고, 의사들의 관리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건강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국가적으로도 노인들이 큰 병을 예방할 수 있으면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 돈으로 병원 의료수가를 더 높여줄 수도 있는 것이고요. 지금 병원들이 원격의료를 반대하고 있지만 사실 그쪽에서도 기회일 수 있어요.”

▷앞으로 대한노인회의 역할은.

“통일 한국을 세우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국 아르헨티나 등 해외에 대한노인회 지회가 많아요. 이북 5도에도 지회를 세워 교류를 시작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노인들이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식의 통일 캠페인을 벌이는 방안도 정부와 협의해볼 수 있겠고요. 무엇보다 대한노인회는 국가가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진정한 어른 단체로 자리 잡아야지요.”

■ 이심 대한노인회장은…

1975년 월간 ‘현대주택’을 발간하며 언론 경영인의 길에 뛰어들었다. 이후 한국잡지협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한국잡지정보관을 개관하고 국제잡지연맹(FIPP) 서울대회를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대한노인회와의 인연은 2005년 노년시대신문을 발행하면서 시작됐다. 노인회 부회장을 거쳐 2010년 노인회장에 당선된 뒤 노인 일자리와 재능나눔 사업에 힘을 쏟았다. 지난해 국회의원 출신 후보 3명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 회장은 재선이 가능했던 이유로 “다른 후보들은 노인들에게 지원해줄 수 있는 것을 찾았는데 나는 오히려 노인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1939년 경북 상주 출생 △건국대 법학과 졸업 △연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수료 △에스콰이어 상무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장 △주택문화사 대표 △한국잡지협회 회장 △한국광고단체연합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노년시대신문 발행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제15~16대 대한노인회장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