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울적한 당신…"30분 이상 햇볕 쬐고, 커피 대신 칡차를"
40대 직장인 윤영주 씨는 최근 부쩍 늘어난 잠과 무기력감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계절성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윤씨는 평소에도 가을이 되면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감이 커졌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올해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증상이 심하다고 느껴 진료를 받았다. 윤씨를 상담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면 일조량 때문에 우울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며 “해를 보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면 ‘가을을 타는’ 계절성 우울증 환자가 늘어난다. 햇볕을 쬐면 우리 몸에선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이 나온다. 하지만 일조량이 줄어 햇볕을 쬐는 시간이 줄면 세로토닌이 감소한다. 대신 잠에 영향을 주는 멜라토닌이 많이 나와 무기력감, 우울감 등을 호소하게 된다.

일반인의 15% 정도가 가을, 겨울에 울적함을 느끼고 2~3%가 계절성 우울증을 경험한다. 계절성 우울증이 있으면 식사량이 급격히 늘고 단 음식과 당분을 찾는다.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는 식욕이 떨어지지만, 계절성 우울증은 반대 증상이 나타난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 가을과 겨울철 살이 갑자기 찌기도 한다. 가을철 정신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는 계절성 우울증에 대해 알아봤다.

일조량 줄어들면 계절성 우울증 증가

우울증은 ‘정신과의 감기’로 불릴 정도로 환자가 많은 질환이다. 여성은 5명 중 1명, 남성은 10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은 우울증을 앓는다. 우울증은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나타날 수 있다.

우울증 환자는 봄과 가을에 늘어난다. 입학, 취업, 인사 등의 변화가 많은 봄에는 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을 겪는 환자가 많다. 가을에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낮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분은 온도, 습도, 일조량에 따라 좌우된다. 북부 유럽인이 남부 사람들보다 말이 적고 어두워보이는 것은 숲은 많고 일조량이 적고 춥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찬바람이 불면 울적한 당신…"30분 이상 햇볕 쬐고, 커피 대신 칡차를"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햇볕의 양과 일조시간이 부족하면 인체에 생화학적 반응이 일어나 에너지 부족과 슬픔, 과식 등을 일으킬 수 있다”며 “뇌의 한 부분인 시상하부는 인체가 외부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데 가을과 겨울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는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의욕이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아진다면 우울증 초기 증상을 의심할 수 있다. 우울증이 있으면 사는 게 재미없고 심한 육체적 피로를 느끼며 성욕감퇴, 불안, 안절부절못함, 무기력감, 죄책감 등을 호소하게 된다. 자존감도 떨어져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이 같은 감정이 자살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인은 우울증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통증을 호소하며 내과나 신경과를 방문해 검사를 받지만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계절성 우울증 환자는 이 같은 증상과 함께 식욕, 체중, 잠이 늘어난다.

우울증 환자 대부분 완치 가능

우울증 증상이 있으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병원 방문을 주저하는 우울증 환자가 많다. 우울증은 잘 낫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울증 치료에 편견이 있는 사람도 많다. 우울증 환자 상당수는 우울증을 스스로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병으로 여긴다. 남의 도움을 받아 우울증 치료하는 것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같은 편견이 병을 키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울증 환자의 70~80%는 적절한 치료를 통해 완치될 수 있다. 우울증은 빨리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스스로 우울증에 걸렸다는 생각이 든다면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이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게 좋다. 우울증 환자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은 처지를 공감해주고 이해해야 한다. 병원에 함께 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환자를 질책하고 공격하면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우울증으로 진단되면 심리치료 등을 받는다. 계절성 우울증은 매일 일정 시간 강한 광선을 쬐는 광선치료를 활용한다. 환자에게 빛을 쪼여 몸속 생체시계를 조정하고 깨진 리듬을 회복하는 원리다. 가정집 조명의 25배에 달하는 밝은 빛을 쓴다. 치료 시간은 매일 30분~2시간 정도다. 3~4주 정도 치료하면 우울증이 상당히 호전된다. 단 이 치료는 빛에 예민하거나 건선약, 항생제, 항정신병약을 먹는 사람은 받을 수 없다.

증상이 심한 경우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우울증은 재발 위험이 높다. 항우울제를 4~5개월 이상 꾸준히 복용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1~2개월 약을 복용한 뒤 증상이 사라졌다고 약을 끊으면 재발 위험이 2~3배 높아진다. 끈기를 갖고 치료해야 한다.

가을 햇볕과 숙면이 예방법

우울증에는 가을 햇볕이 보약이다. 실내생활을 주로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은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밖에 나가 산책을 해야 한다. 매일 시간을 정해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빨리 걷기, 가벼운 조깅, 수영, 요가 등을 하면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이 활성화돼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다. 술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울감이 있을 때 술을 마시면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지만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평소보다 감정이 격해지고 우발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취한 기분이 좋아 술을 반복적으로 마시면 알코올의존증이 생길 수 있다.

잠을 잘 자는 것도 중요하다. 깊은 수면은 뇌와 신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시간 우리 몸은 신체 에너지를 보충하고 생물학적 기능을 회복한다. 깊은 수면 중에는 몸속 혈액의 대부분이 근육에 집중돼 에너지를 보충해준다. 정 교수는 “며칠 연속 잠을 못 자면 피로가 누적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불규칙한 수면습관, 교대근무, 노화, 약물, 지나친 스트레스는 수면중추를 병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잦은 사람은 낮에 쌓인 피로가 회복되지 않아 노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카페인이 많은 커피를 버릇처럼 마시는 것도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은 습관이다. 생강차, 칡차, 연차, 율무차, 두충차, 우롱차 등을 커피 대신 마시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도움말: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석훈 교수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