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의 ‘풍경’.
장욱진의 ‘풍경’.
‘동심의 화가’ 장욱진 화백의 1979년작 ‘가족’은 서양화가답지 않게 토속적이고 동화적이다. 분할된 집의 형태, 가족의 자세와 표정, 짝지어 날아오르는 새, 푸른 하늘 양쪽에 떠 있는 붉은 해와 파란 달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역동감과 조화로운 풍경을 이룬다. 평생을 선비처럼 유유자적하며 살았던 장 화백은 자신의 삶을 통해 궁핍한 시대의 인간상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

장 화백을 비롯한 국내 유명 작가의 그림을 압축해 뮤라섹 기법으로 제작한 이색 판화 작품을 마치 빵집에서 빵을 고르듯 살 수 있는 ‘아트 마트’가 열린다. 한국경제신문과 서울옥션이 공동으로 14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서 펼치는 ‘가을 秋, 그림 畵-프린트 베이커리’전이다. 추석을 맞아 술이나 과일, 의류 등 평범한 선물에서 벗어나 ‘문화’를 선물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뮤라섹 판화는 피그먼트 안료를 사용해 그림을 압축한 다음 아크릴 액자로 만든 아트 상품이다. 질감이 섬세하고 색감이 생생히 살아 있는 게 특징이다. 참여 작가들이 직접 고유번호(에디션)를 붙이고 사인도 했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미술을 좋아하지만 선뜻 작품을 사기 쉽지 않은 일반인이 쉽게 그림을 골라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프린트 베이커리’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김환기 김창열 이왈종 고영훈 사석원 유선태 윤병락 정일 하명은 박형진 신철 등 중견·신진 작가 20여명의 뮤라섹 판화 30여점이 걸린다. 미술품 소장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작품값을 3호 9만원, 5호 15만원, 10호 18만원, 20호 38만원으로 책정했다. 다만 점당 55만원에 출품된 장 화백의 그림은 구입한 고객이 2년 뒤 되팔 경우 구입가의 80%를 1년간 보장해 준다.

김환기의 ‘항아리와 매화’.
김환기의 ‘항아리와 매화’.
출품작은 예쁜 구상화부터 정물화, 풍경화, 팝아트까지 현대미술의 스펙트럼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김환기의 1958년작 ‘항아리와 매화’가 관람객을 반긴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펼친 파리시대 대표작으로, 조선백자와 매화의 미학적 가치를 되살려 냈다.

인기 화가 이왈종 화백의 ‘제주 생활의 중도’ 시리즈도 나왔다. 골프장 자동차 꽃 새 강아지 닭 등 생활 주변에서 숨 쉬는 동식물이 신나게 뛰노는 중도의 세계를 경쾌하고 시원스럽게 묘사했다. 50대 인기 화가 사석원의 작품 ‘꽃을 먹은 양’도 판화로 만날 수 있다. 몸 안 가득히 꽃이 만발한 양의 모습을 통해 희망의 미학을 보여준다.

40여년간 돌과 책, 백자를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린 고영훈, 꽃의 화가 김재학,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을 동화처럼 묘사한 정일, 고향인 경북 영주에서 탐스럽게 익은 사과를 화폭에 옮긴 윤병락, 동화 같은 여행 이야기를 펼쳐낸 전영근, 붉은 새싹을 바라보는 강아지와 소녀를 그린 박형진과 소소한 일상을 먹과 유화로 표현한 그의 남편 강석문, 인간 내면을 시처럼 담아낸 신철 등 작가 특유의 재치와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도 출품됐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