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중인 진리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초대 총재 내정자의 행보가 거침없다. 어제 청와대를 예방해 박근혜 대통령과 환담했고, 한국기업인 간담회에서도 중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는 “중국 경제는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고, 지속가능한 발전도 확신한다”고 주저없이 말했다.

AIIB 설립 과정에서 보여준 중국의 집념과 돌진은 대단했다. 경제력, 국방력에 정상외교 역량까지 총동원한 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 미국의 우려와 견제, 일본의 불참에도 57개국이 창립멤버로 확정된 데는 한번 정한 국가적 프로젝트라면 무섭게 밀어붙이는 저력 때문일 것이다. 일각에서 G2라 할 만큼 커진 경제력 등 국력만으로 이룬 성과가 아니었던 것이다. 진 총재 내정자는 대한상의 강연에서 올해 안 공식 출범할 때는 70개국 이상이 동참할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AIIB에 가입해달라는 공식 제의를 받고 8개월이나 고민하던 우리 정부가 결국 막바지에 가입결정을 하기까지에도 중국 측의 집요한 권유와 당부가 있었다. AIIB건만이 아니다. 소위 전승절 기념식에 박 대통령의 참석 요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에서 나타난 중국의 집요함과 국익 관철 의지는 무서울 정도다.

박 대통령의 관심사인 동북아개발은행 이슈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통일한국을 향한 박근혜 정부의 비중 있는 아젠다지만 대통령 혼자 외치는 구호처럼 돼간다. 지난해 이른바 드레스덴선언에서 박 대통령이 자본금 50억달러로 구상을 구체화했고, 최근 시진핑과의 회담에서는 중국에도 참여를 요청한 사안이다. 하지만 어떤 장관도, 어떤 국책기관도 이를 위해 뛰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진리췬은 동북아개발은행에 대해 묻는 한국 언론에 “AIIB에는 희소식”이라고 간단히 밝혔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섭섭하다고 말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박 대통령은 이번 중국 방문에서도 동북아개발은행을 말했다. 그러나 어떤 장관도 말이 없다. 대통령은 통일을 말하지만 이미 AIIB에 다 빼앗긴 꼴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