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시대 기관투자가들의 새 고민…"너무 많은 돈 맡기지 마세요"
“죄송하지만 너무 많은 돈을 맡기지 말아주세요.”

저금리와 시황 부진으로 돈 굴릴 곳을 찾지 못한 공제회 등 국내 연기금들이 자산규모를 줄이기 위한 ‘디마케팅(demarketing)’에 나서고 있다. 과거에는 가입자·회원 유치를 통한 외형 늘리기에 집중했지만 최근 시장 여건에서는 약속한 수익률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보니 오히려 자금이 더 들어올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63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우정사업본부 예금사업단은 올해 예금 수신목표치를 60조원으로 잡았다. 수신잔액을 지금보다 3조원가량 낮추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연 2.1%(1년만기 정기예금 기준)였던 금리를 1.55%로 낮췄다.

가입한 회원에게 연 4~4.75%의 높은 지급률을 보장하는 공제회 역시 신규 자금 및 회원 확장을 자제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지난 7월 한 번에 100만~5억원의 큰돈을 맡기는 ‘목돈수탁예금’의 금리를 연 3%대에서 2.8%로 낮췄다. 저금리 시대에 투자처를 찾고 있는 목돈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경우 목표 수익률을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방행정공무원이 가입하는 지방행정공제회나 과학·기술인을 회원으로 두는 과학기술인공제회도 비슷한 이유로 회원 확장 마케팅을 최소화하고 있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공제회 가입 한도금액을 높여달라는 요구가 많지만 쉽지 않다”며 “역마진을 피하려면 최소 연 5~6%의 운용 수익률을 내야 하기 때문에 자금이 늘어날수록 부담이 크다”고 털어놨다.

실제 이들 기관은 과거와 같은 수익률을 내지 못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낮은 금리로 채권투자 수익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국내외 주식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는 추세다. 대안으로 제시된 부동산·인프라 등 대체투자 역시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유동성이 집중적으로 몰리며 자산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평가다. 한 보험사 투자담당자는 “‘총알은 있는데 쏠 곳이 없는’ 상황”이라며 “예전에는 운용사가 기관에 자금제공을 부탁했지만 이제는 기관이 운용사에 자금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자산이 늘어나는 속도에 맞춰 시설이나 인력을 키우기도 어렵다. 덩치가 커질수록 수익률을 방어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은 운용사들도 마찬가지다. 한 공제회 투자전략팀장은 “거래하고 있는 운용사가 ‘지금 있는 돈만 잘 굴려드리겠다’며 더 이상의 자금은 받지 않겠다는 뜻을 고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