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한때 시장 점유율 2% 미만의 군소 회사였던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이 선두권으로 도약한 비결은 다양한 인재 확보였다.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부회장(대표)은 2003년 취임한 뒤 ‘스페셜 트랙’ 제도를 통해 작가, 미술 큐레이터, 축산업자 등 다양한 배경의 직원을 채용했다. 금융과 관련 없어 보이는 경력이지만 두 회사는 소·돼지 등의 담보능력까지 평가할 수 있는 축산업자 출신 직원을 통해 동산(動産) 담보대출이라는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현대카드는 ‘인재 다양성’을 바탕으로 금융권의 ‘혁신기업’이라는 평가와 함께 업계 2~3위를 다투는 선두권 카드사가 됐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임직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기업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며 “비슷한 성향의 사람으로만 채워진 기업은 타성에 젖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성·외국인 배려 확대

최근 글로벌 회사로 도약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은 성(性) 연령 인종 문화 등에 관계없이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해외 사업 비중이 높아지고 소비자 수요가 세분화되면서 인재 다양성 확보가 기업의 지속성장 여부를 판가름할 관건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두산그룹은 임직원 4만여명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인사담당 등 외국인 다수가 임원진에 포진해 있다. 두산은 교육훈련과 워크숍 등을 통해 외국인 직원이 두산의 기업문화와 인재상(像)을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임직원과 한국인 직원이 함께 매년 일정 시간 사회봉사활동을 해 소속감을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임직원 비율은 전체의 66.5%, 여성은 42%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양적 다양성뿐 아니라 내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고경영자(CEO)들을 해외에서 일정 기간 정기적으로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재 다양성 확보는 CEO의 첫 번째 임무”라며 “CEO부터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과 시장을 접해 다양성을 확보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기업은 여성 인력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육아휴직과 탁아소 운영 등 모성보호뿐 아니라 리더십 고양, 직급별 역량 개발 등을 지원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여성 건설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2011년 10.6%이던 여성 임직원 비율을 2013년 11.7%로 높였다. LG하우시스는 ‘We하女’(위하여) 프로그램으로 월 1회 CEO와의 간담회 등 임직원 이슈토론을 열어 여성 발언권을 보장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여성 관리자 양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10.5% 수준인 여성 임직원 비율을 높여 간다는 구상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해 지속가능보고서를 발표한 현대자동차 SK텔레콤 IBK기업은행 등 75개 상장사를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이 경력개발과 모성보호(탁아소 운영 등)를 위해 107개(기업당 1.42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는 ‘다양성 헌장’을 선포했다. 2013년 국내 최초로 구성원의 다양성 존중과 차별 철폐를 명문화했다.

○경직된 기업문화 극복해야

전문가들은 다양성 확보와 관련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특히 ‘끼리끼리 문화’가 만연한 금융업계가 대표적이다. ‘남들과 다른 것’ ‘튀는 것’을 배제하는 문화가 여전하다.

한 전직 시중은행 부행장은 “몇 년 전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 들어갔는데, 한 남자 지원자의 구두가 너무 뾰족하다는 이유로 낙제점을 준 임원이 있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과거 금융권 사람들은 주로 상경계 중심의 인문계 출신으로 평생 한 직장에만 몸담아온 배경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기존의 틀이 강조됐다. 담보가 아니라 기업 기술을 평가해 대출하는 기술금융뿐만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과 금융이 결합한 핀테크 등 ‘신개념 금융’에 대한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지적이다. 한국 금융회사의 이공계 출신 임직원 비율은 10%대에 머물러 있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다양성을 배척해온 한국 은행들이 핀테크나 기술금융 같은 큰 변화 앞에서 다소 허둥대고 있다”며 “교수나 법조인 일색의 다양성 없는 사외이사진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송찬후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는 “다양성은 현대 기업 경영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가치가 되고 있다”며 “최고경영진은 기업의 전략 및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여성이나 다문화 출신 등 인구통계적 구성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인재포럼은 기조세션1(한계돌파 기업 : 틀 바꾸기로 세상을 보라)에서 펩시콜라 등 글로벌 기업의 다양성 확보 전략을 소개한다. 또 특별세션2(기업의 미래성장, 여성인력에 달렸다)와 C3세션(다문화시대의 인적자원개발을 통한 국가전략), C4세션(고령화 시대의 평생학습) 등을 통해 여러 측면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