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발전·통합' 기준 지도층 대신 중기인·서민에 적용
롯데사태·성완종파문, 재벌家 사면제한에 영향 미친듯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임시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한 광복 70주년 사면 명단에는 예상대로 경제인은 소규모에 그쳤고,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박 대통령이 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번 사면은 생계형 사면을 위주로 하여 다수 서민과 영세업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했고, 당면한 과제인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건설업계, 소프트웨어업계 등과 또 일부 기업인도 사면의 대상에 포함했다"고 밝힌 대로였다.

재계 총수 가운데 사면 대상에 포함된 이는 사실상 최태원 SK그룹 회장뿐이었다.

최 회장을 비롯해 주요 경제인 14명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나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 사면 대상으로 거론된 재벌가(家) 인사는 모두 빠졌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면 단행 방침을 밝힌 이후 이번 사면에 경제인과 정치인이 포함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다.

박 대통령이 사면의 명분으로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가발전과 국민통합을 내걸었고 이 시기가 박 대통령이 경제살리기를 특별히 강조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재계와 정치권에서는 경제활성화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기업 총수가 사면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공개 요구가 잇따랐다.

하지만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가동돼 사면대상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이런 기대는 점점 희박해졌고, 지난 10일 사면심사위가 대통령 보고용 사면안을 의결한 이후에는 '정치인 배제·경제인 최소화'로 기류가 완전히 바뀌었다.

사면 단행 시점이 다가오면서 박 대통령이 평소 엄격한 기준과 원칙을 적용하던 사면관(觀)을 그대로 적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흘러나왔고, 이날 최종 확정된 사면 명단도 이러한 전망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을 국민적 공감대에 맞춰 제한적으로 행사하겠다고 공언해 온 박 대통령이 자신의 '사면 원칙'을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 제한'을 내걸었고, 대통령 당선인 시절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사면 방침을 밝히자 "국민정서와 배치되는 특별사면은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만약 사면이 강행되면 이는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 권한 남용이며 국민 뜻을 거스르는 것" 이라며 비판했다.

아울러 올초 정치권을 들썩였던 '성완종 파문'이나 최근 재벌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을 불러온 '롯데 사태'도 이번 사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 파문' 때 성 전 회장의 사면로비 의혹을 상기시키면서 "경제인 특별사면은 납득할만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고 성완종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오늘날과 같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김승연 회장이나 구본상 전 부회장이 사면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이들이 성완종씨처럼 이미 과거에 2차례 사면을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이번 사면의 기준으로 밝힌 '국가발전·국민통합'은 정치인이나 경제인 등 사회지도층이 아닌 중소기업인이나 서민을 위해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광복 70주년을 대한민국이 새출발하는 계기로 삼자는 취지에서 경제활성화와 국민 화합을 도모하는 동시에 국민적 사기를 진작시켜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은 노동개혁 등 4대 부문 개혁을 차질없이 추진하기 위한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사면 규모도 지난해 설 명절 사면 때 사면을 받은 5천900여명에 비해 크게 늘어났고, 특별사면뿐 아니라 가석방과 보호관찰 임시 해제, 운전면허 취소 등 행정제재자에 대한 감면 혜택을 받은 이를 포함해 총 220만명에 달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min2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