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명사들이 소개하는 오현스님 선시(禪詩)…선 수행 통한 깨달음 경지 보여줘
감수성이 예민하던 대학 시절에 읽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최인훈의 광장은 아직도 뇌리를 스친다. 나이에 따라 탐독의 대상도 변하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무산 오현 스님의 선시(禪詩)를 통해 새로운 독서 세계를 접했다. 선시란 선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낸 시다. 즉 선시는 시와 선의 만남이다.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시조 시인이기도 한 오현 스님은 선시의 현대적 부활을 이룬 분이다. 국난의 시기에 한용운이 음유한 ‘님의 침묵’의 맥을 이은 스님은 백담사 인근에 만해마을을 조성하고 만해축전과 만해대상을 주관했다. 1918년 만해가 창간했지만 3회 발행으로 그쳤던 시 전문지 ‘유심’ 또한 오현 스님의 발원으로 2001년 복간했다.

[책마을] 명사들이 소개하는 오현스님 선시(禪詩)…선 수행 통한 깨달음 경지 보여줘
오현 스님은 국제화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30여년 전 스스로 자처한 고행의 길에서 미국 텍사스주 시민권을 받았다. 지난 3월20일 미국 UC버클리에서 열린 ‘설악무산 그리고 영혼의 울림’ 행사에서는 한국인의 맥박이라 할 수 있는 시조의 현대적 부활과 세계 평화를 설파했다.

어린 나이에 불가에 귀의한 스님이 펼친 선시의 세계를 조명하는 학자들의 논문과 연구서도 다수 출간됐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엮은 문학전집 《적멸을 위하여》는 스님의 팔순을 기리는 후학들의 학문적 연구서다. 김민서 씨는 ‘조오현선시연구’로 지난해 경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존 작가에 대해 150편이 훌쩍 넘는 연구 논저가 나온 건 극히 드문 일이다.

권성훈 고려대 연구교수가 엮은 《이렇게 읽었다-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반디 펴냄)는 대중에게 보다 친근한 선시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스님의 시에 당대 최고 문인과 석학들의 해설을 곁들였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고은 김남조 신경림 시인을 비롯한 문인과 양승태 대법원장, 김진태 검찰총장 등 각계각층의 명사 115인이 참여했다. 대부분 이미 지상을 통해 발표된 내용을 편집했지만 일부 새로운 평석도 들어 있다. 편저자인 권 교수의 표현대로 “스님의 50여년 된 구도자적 시력과 시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재구성한 결과물”로서 가히 ‘선시의 경전’이라 할 수 있다.

필자도 큰스님의 가르침으로 이제 겨우 선시의 세계가 무엇인지 공부하던 중에 ‘겨울 산짐승’이란 시에 대한 글을 올릴 수 있는 영광을 가졌다. ‘조주스님 어록을 읽다/잠이 들다/우두둑 설해목 부러지는/먼 산 적막 속으로’(겨울 산짐승 중). 간결하면서도 깊은 내공에 빨려들게 하는 가히 대선사의 절대 진리를 향한 포효라 아니할 수 없다. 스님의 대표작 ‘아득한 성자’에 나오는 ‘하루라는 오늘/오늘이라는 이 하루에/(중략)/천년을 산다고 해도/성자는/아득한 하루살이 떼’보다 직접 화두를 체득하게 한다. 선시의 진미를 만끽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