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IMF "긴축이 능사 아니다"…美·日·獨엔 거침없는 '쓴소리'도
국제통화기금(IMF)이 달라졌다. 과거 구조개혁과 긴축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금과옥조로 삼던 모습과 달리 단기 부양책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과 독일 일본에 대해서도 전례 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CB 양적 완화 정책 지속돼야”

IMF는 27일(현지시간) 유럽중앙은행(ECB)에 양적 완화 정책을 최소 내년 9월까지 지속할 것을 권고했다. IMF는 이날 발표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대한 연례평가 보고서에서 “유로존의 경기회복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마흐무드 프라드한 IMF 유럽담당 국장은 한발 더 나아가 “1조유로 규모의 국채매입 프로그램을 뛰어넘는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개혁 등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려는 노력을 더 적극적으로 하라는 주문이다.

IMF는 그리스에 대해서도 이전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국가보다 훨씬 유연한 처방을 내놓고 있다. 연금 축소와 세제개혁 등 방만한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것과 동시에 파격적인 부채 탕감과 신규자금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IMF는 그리스와 채권단 간 구제금융안 협상 과정에서 그리스를 지원하기 위해 최대 채권국인 독일을 압박하기도 했다.

영국 BBC는 IMF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동아시아 국가, 그리고 과거 수십년간 자금을 지원해준 남미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긴축 일변도의 정책 개입에 나선 것과는 딴판이라고 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위기에 처한 포르투갈과 아일랜드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공무원 임금삭감 등을 강력히 요구할 때와도 달라진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최대 지분국 미국과 일본도 공개 비판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달 미국 중앙은행(Fed)에 기준금리 인상을 내년으로 연기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인플레이션과 고용 전망이 불확실하고, 금리를 너무 빨리 인상하면 미국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IMF가 최대 지분(쿼터)을 갖고 있는 미국에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정책권고를 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2010년 합의된 IMF 지배구조 개혁안 통과를 사실상 막고 있는 미국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해석도 있다.

IMF는 지난 23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가 엔화가치의 평가절하에만 기댄 채 근본적인 경제개혁을 소홀히 하면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IMF의 변신’에 대해 회원국의 입장을 고르게 반영해야 하는 국제기구로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당연한 의견 표명이라는 의견과 함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브릭스은행 등 경쟁자의 출현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신흥국 회원국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중국과의 연례협의회에서는 “위안화가 더 이상 평가절하된 통화가 아니다”며 중국의 통화정책을 두둔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다.

IMF 내부에서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데이비드 립턴 수석부총재는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IMF의 지배구조도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맞춰 현대화해야 한다”며 유럽 출신이 총재를 독식하는 관행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