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의 판화 전시회 ‘꿈과 기억’에 출품한 사석원의 ‘해금강 일출’.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의 판화 전시회 ‘꿈과 기억’에 출품한 사석원의 ‘해금강 일출’.
가족과 함께 쉬면서 대화를 나누는 삶의 중심이 바로 가정이다. 디지털시대에도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집안 곳곳에 그림을 거는 가정이 늘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의 감성에너지를 북돋기 위해 사무실에 그림을 거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1층 한경갤러리는 20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한국 현대미술 거장들의 판화-꿈과 기억’전을 연다. ‘아트 인테리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에는 작고 작가 이응로와 이대원을 비롯해 김종학 이숙자 사석원 박항률 유의랑 홍지연 등 유명 화가의 판화 작품 30여점이 걸린다.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화가들의 판화를 보면서 작품의 시장성과 원본·사본의 관계 등을 조명해볼 수 있는 전시회다.

판매가는 점당 25만원부터 35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거실을 비롯해 안방, 화장실, 부엌, 서재, 사무실, 직원 휴게실 등에 어울리는 그림을 큐레이터가 추천해 준다. 500만원 이하 작품은 손비 처리가 가능해 사무실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기업이라면 큰돈 들이지 않고 좋은 작품을 구할 수 있는 기회다.

출품작은 풍경화부터 팝아트, 인물화, 추상화, 누드화 등 현대미술의 스펙트럼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80세를 앞두고 여전히 설악산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화폭과 마주하는 김종학의 1980년대 작품 ‘설악산’을 판화로 만날 수 있다. 설악산의 다양한 이미지를 마음속에 담아뒀다가 작업실에서 하나하나 꺼내 그린 작품으로 꿈틀거리는 생명력과 풋풋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한평생 ‘꽃비’처럼 살다 간 한국 화단의 거목 이대원의 판화 두 점도 볼 수 있다. 그는 1950~60년대 한국 화단에 일던 미니멀리즘 경향의 추상화 바람을 뒤로 하고 자연 풍경을 그리는 구상회화를 고집하며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지켰다. 이번 전시에는 화려한 색채로 들녘의 풍경을 채색한 ‘농원’과 ‘연못2’가 나왔다.

‘당나귀 작가’로 유명한 사석원이 2007년 작업한 ‘금강산’ 시리즈 세 점도 걸렸다. 금강산의 산세를 마구 짜낸 물감으로 거칠게 찍어 바른 만경대와 해금강의 일출 풍경에서는 시공을 초월한 동화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강력한 필선과 대담한 구도 안에 인간적 우수와 해학을 담은 이응로의 문자 추상화, 들판에 툭툭 불거진 보리 이삭 사이로 드러누운 여인의 몸매를 그린 이숙자의 그림, 유년시절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여인과 꽃으로 묘사한 박항률의 작품, 이국적인 여성의 얼굴을 그린 조각가 최종태의 인물화, 유의랑의 정물화와 홍지연의 닭 그림도 출품됐다.

한경갤러리 관계자는 “판화는 희소성이라는 점에서 저평가됐지만 덜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거장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어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기업인과 직장인, 주부 등이 판화를 구입해 집안과 사무실을 꾸밀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