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의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안을 놓고 양측의 힘겨루기가 이뤄지는 가운데 이달 5일 예정된 그리스 국민투표를 놓고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투표를 강행하겠는 방침을 재확인하자 채권단은 '투표 전 협상은 없다'며 맞불을 놨다.

특히 최대 채권국인 독일과 그리스의 갈등이 크게 부각되는 양상이다.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이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오면 그리스가 유로존 균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독일은 우려한다.

국민투표에서 채권단 협상안에 대한 반대가 많으면 협상 결렬에 따른 그렉시트 우려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 국민투표 앞두고 그리스-채권단 갈등 고조
2일 국제 금융시장에 따르면 그리스가 지난달 30일 만기였던 국제통화기금(IMF)의 채무를 갚지 못해 '기술적인 디폴트'에 빠진 이후 그리스와 채권단의 갈등은 고조되는 분위기다.

구제금융 협상안을 놓고 채권단과 '치킨게임'을 벌인 그리스는 전격적으로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치프라스 총리는 지난달 27일 긴급 연설을 통해 채권단이 그리스 국민에게 참을 수 없는 부담이 될 제안을 했다며 채권단의 제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그리스의 국민투표 선언에 한때 타결 기대감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 협상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일단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새로운 협상이 시작될 가능성은 작다.

그리스가 국민투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지만 그리스 정부는 예정대로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채권단의 제안을 일부 수정하면 수용할 수 있다고 채권단에 보낸 서한이 공개되면서 국민투표 취소 가능성도 나왔지만 그리스 정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은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추가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국민투표에서 그리스인들이 채권단이 내놓은 구제금융 협상안에 찬성표를 더 많이 던지면 그리스는 채권단과 다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반면, 그리스 국민이 협상안에 반대하면 최악의 경우 협상 결렬에 따른 그렉시트 소용돌이로 빠져들 수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와 그렉시트는 별개라며 국민에게 반대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반면, 유럽연합(EU) 정상들은 반대표는 유로존 회원국 지위에 반대하는 것과 같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가 이런 EU 지도자들을 '극단적인 보수 세력'이라고 부르면서 그리스 국민을 협박하고 있는데 불편함을 드러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양측의 갈등 속에 그리스에서는 찬성과 반대 여론이 팽팽해 투표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그리스-독일 갈등 부각

국민투표를 앞두고 그리스와 독일의 갈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추가 협상은 없을 것이라는 유로그룹 가운데 특히 최대 채권국인 독일의 입장이 강경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전날 연방의회 연설에서 그리스 국민투표 이전에 협상은 없다고 다시 확인했다.

그는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를 지켜보고 유로존 각국은 저마다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무원칙하게) 타협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유로존의 맹주인 독일은 그리스 위기가 유로존 전체의 균열로 번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많다.

유로화 통합 등에 따른 최대 수혜국이 독일인만큼 혹시 모를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주변 국가로 전염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남부 유럽에서는 좌파가 꿈틀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휘청거린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긴축정책과 높은 실업률에 지친 국민이 '긴축 반대'를 내세운 좌파에 표를 던지고 있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정권을 잡은 그리스에 이어 최근 치러진 스페인 지방선거에서는 좌파정당 '포데모스'(Podemos·우리는 할 수 있다) 등이 참여한 좌파 연합이 주요 도시 의회를 장악했다.

올해 9~10월 총선이 예정된 포르투갈에서는 긴축 반대, 세금 감면 등을 외치는 사회당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로존에서 회원국들의 탈퇴가 이어지면 유럽 실물경제가 악영향을 받고 유로화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 채무의 최대 채권국이 독일인 점도 갈등 요인으로 꼽힌다.

신환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리스의 유동성 위기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채무 만기가 돌아오는 이달 20일 큰 고비를 맞는다"며 "그리스의 ECB 채무 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많은 부분을 독일 국민의 세금들로 메워야 한다는 점에서 독일 국민이 그리스를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