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질병의 정치화'가 초래한 내상과 손실
국가적 재난을 겪으면서 영웅을 만들어내는 국가가 있는 반면 희생양을 찾기에 바쁜 국가도 있다. 국가도 실패를 범할 수 있다. 실패에서 배우려는 국가가 있는 반면 이를 정쟁의 소재로 삼으려는 국가도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은 대한민국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메르스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든 듯하다. 추가적인 확진자와 사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를 복기해 보자. 지난 5월20일 1번 환자의 메르스 발병이 확인됐을 때 병실 의료진과 가족만을 격리했다. 5월29일 14번 환자의 삼성서울병원 입원이 알려졌을 때도 응급실 환자 및 의료진만을 격리했다. 하지만 ‘병실과 응급실이 아닌 병동 전체’로 격리 범위를 넓혔어야 했다. 믿어지지 않는 연이은 안일한 대응으로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5월31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보건당국이 할 수 있는 조치 중 하나는 병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다. 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방문객들로 하여금 보건당국에 신고토록 했어야 했다. 하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접촉자 추적 관리를 통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이는 정말로 오판이 아닐 수 없다. 6월7일에서야 보건당국은 메르스 환자 발생 및 경유 병원을 공개했다. 메르스 사태를 키운 건 높은 전염력도 바이러스 변이도 아닌 초기대응 실패와 정책의 실기(失機)였다.

그런 점에서 6월4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기자회견은 긍정적이다. 문제를 공론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메르스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지지도를 올리려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질병통제는 중앙정부의 소관사항이다. 혹여 복지부를 압도하려 했다면 그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질병통제를 놓고 경합할 일은 아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삼성서울병원 의사를 메르스를 전파한 ‘개념 없는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언론에의 노출 빈도가 높아지면서 그는 개성공단을 모델로 남포공단에 서울공단을 개설하겠다는 메르스와 무관한 정치 발언을 하기도 했다.

6월13일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 입국은 한국에는 불명예 그 자체다. WHO는 17일 한국의 메르스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한국에 대한 여행·교역 금지를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메르스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고 지역사회 감염 위험이 없어 초기대응에는 실패했지만 한국의 방역 시스템으로 극복할 것”이라는 소견을 냈다. 국제기구의 객관적인 평가도 메르스를 잠재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부가 무엇을 숨기고 있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 19일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메르스 사태를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불통이 빚은 대재난”으로 규정했다. 야당 대표로서 그런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내일이면 메르스 한 달인데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저주성 발언 을 했다. 국정의 동반자로서 야당 대표가 할 말은 아니다.

지난 25일 정부는 하반기 경제운영 방향을 밝히면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식화했다. ‘메르스발(發) 추경 편성’인 것이다. 태풍 등 자연재해로 인한 추경 편성은 과거에도 있어 왔다. 하지만 ‘질병’으로 인한 추경 편성은 매우 이례적이다. 메르스가 내수를 위축시켰다면 이는 ‘질병의 정치화’가 부른 ‘내수 타살’이다. ‘준(準)전시상황’이니 ‘메르스 치사율이 40%’라느니 하는 선동이 사회를 공포분위기로 몰고 갔다. 내수는 그렇게 해서 얼어붙었다.

추경 편성은 정책기조의 전환을 수반한다. 추경을 통한 경기부양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인위적 경기부양은 노동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뒷전으로 밀어낼 것이다. 더욱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이어서 올 하반기를 놓치면 구조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 메르스라는 불의의 일격이 ‘구조개혁’을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메르스는 관리하기에 따라 그 또한 지나갈 일이었다. 하지만 메르스를 지렛대로 정치쟁점을 찾으려 했다. ‘질병의 정치화’는 우리에게 깊은 내상과 경제적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