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플랫폼인 애플의 ‘헬스킷’(왼쪽)과 구글의 ‘구글핏’ 로고.
헬스케어 플랫폼인 애플의 ‘헬스킷’(왼쪽)과 구글의 ‘구글핏’ 로고.
촘촘한 규제 때문에 한국에서 애플의 헬스킷이나 구글의 구글핏 같은 헬스케어 플랫폼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진단됐다. 모바일 헬스케어산업의 발전을 꾀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융합을 촉진하기 위해선 대대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6일 ‘제조·서비스 융합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과제’라는 보고서에서 개인정보보호법 및 의료법의 제약과 모바일 의료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한국의 모바일 헬스케어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의 건강정보는 민감한 정보로 분류돼 맥박이나 혈압 관련 정보를 얻으려면 별도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 모바일 의료 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개인의 의료 관련 정보를 한곳에 모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2011년 모바일 의료용 앱 규제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하는 등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이 덕분에 애플은 작년 6월 초 스마트폰 이용자의 개인 건강정보를 수집해 통합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인 헬스킷을 선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구글도 개인 건강정보를 공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구글핏을 공개했다.

원격 의료 제한…모바일 의료앱 '무용지물'

미국은 올 들어 모바일 헬스케어 규제를 빠르게 완화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1월 당뇨병 환자 혈당을 측정하는 의료기기와 연동된 모바일 앱을 처음 승인했다. 의료기기 전문 업체인 덱스콤이 개발한 앱으로 당뇨 환자의 혈당 수치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장치다.

한 달 뒤 FDA는 모바일 의료기기와 보조기기를 구분한 뒤 별도의 보조기기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본체 성능을 지원하거나 보충하는 장치면 보조기기로 구분해 일반 의료용 앱보다 약한 규제를 적용한 것이다.

같은 시기 FDA는 의료 관련 정보를 단순 취합해 보여주는 데이터시스템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새로 정리했다. 이전까지 의료 데이터시스템을 사전에 FDA 허가를 받도록 했지만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의료 데이터시스템은 FDA에 미리 신고하지 않고 제조업체 자체 판단에 따라 바로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이와 함께 의료기기보다 위험도가 낮은 기기를 건강관리(웰니스) 제품으로 따로 묶어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매일 에너지 소비나 심박동 수를 점검하는 모바일 앱이나 체중 관리를 목적으로 음식물 소비량을 기록하는 앱 등을 대표적인 웰니스 제품으로 꼽았다.

반면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 원격 의료가 제한돼 있어 덱스콤이 개발한 앱 등을 원천적으로 쓸 수 없다. 다른 규제도 마찬가지다. 2013년 제정한 ‘모바일 의료용 앱 안전관리 지침’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의료기기에 해당하는 모바일 앱과 의료기기가 아닌 모바일 앱으로만 단순 구분한 뒤 더 이상 규제를 완화하지 않고 있다. 미국처럼 보조기기나 데이터시스템을 따로 떼서 별도 가이드라인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다. 다만 작년 3월 비의료 목적으로 심박 수 등을 측정하는 모바일 앱을 허용하고, 다음달부터 웰니스 제품을 별도로 관리할 예정이다.

리서치 업체 ‘리서치투가이던스’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의료 관련 모바일 앱 이용자는 5억명에 이를 전망이다. 의료 관련 모바일 앱 매출 규모 역시 지난해 40억달러에서 2017년에는 265억6000만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