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있는 A중소기업은 지난해 1월 바뀐 ‘국토계획법’에 따라 공장 증축 신고서를 해당 기초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하지 않았다. 민간합동규제개선추진단의 지적에 따라 계획관리지역 내 기반시설 요건만 갖추면 심의를 면제하도록 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자체 산하 지방도시계획위원회는 법 개정 사항이 ‘조례’에는 반영이 안됐다는 이유로 심의 절차를 진행하도록 했다. 결국 A중소기업은 두 달 넘도록 공장 증축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A중소기업 경우처럼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따라 상위 법령은 개정됐는데 지자체 조례는 그대로여서 규제완화 정책이 무용지물이 된 사례가 감사원 감사에서 대거 적발됐다. 감사원은 현 정부 들어 추진 중인 ‘규제 개선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23일 발표했다.

감사원은 국토교통부 소관 투자활성화 관련 15개 법률 개정 사항의 조례 반영 여부를 확인한 결과 161개 지자체의 조례 개정 대상 1839건 중 절반이 넘는 957건이 개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법 개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국토부 장관에게 조례 개정을 지도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이번 감사에서는 정부가 화학물질 관련 규제 강화에 따른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중소기업의 화학물질 관리지원강화’ 대책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공개문에 따르면 환경부는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시행(2015년 1월1일부)에 따른 중소기업 애로점을 청취하고 이에 대한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고 그해 9월 국무조정실에 보고했다.

환경부는 중소기업에 대해 산업재해예방시설 건설 융자사업, 클린사업장 조성 지원사업, 환경개선자금 융자사업에 각각 1001억원, 914억원, 12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 산업재해예방시설 융자사업은 실적이 ‘제로(0)’였다. 클린사업장 지원사업은 예산 집행률이 0.2%에 불과했고, 환경개선자금 융자사업은 11%에 그쳤다.

감사원 관계자는 “대출 시 업체에 담보를 요구했고, 금리가 연 3% 이상으로 시중 기업들의 운영자금 대출금리를 웃도는 등 제도의 실효성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환경부 장관에게 지원책에 대해 융자조건 완화, 홍보 강화 등의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에서는 또 행정 공무원의 소극적 업무처리 때문에 규제가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부당한 사례도 적발됐다. 현행 지방세법에선 과세표준액 수정신고를 하면 ‘정당한 사유’에 한해 가산세를 면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전국 46개 지자체 가운데 감면 사례는 2011년 이후 세 건에 불과했다.

과표 상향에 따라 오히려 세금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중소기업들은 35억원가량의 가산세를 더 낸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민원 발생을 이유로 특정 기업에 공공시설 이용을 제한한 지방 공무원 두 명을 소극행정 사례로 지목해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이미 관련 제도가 도입돼 추가 대책이 필요 없는 데도 투자활성화 과제로 선정한 사례도 있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규제개혁 과제로 추진한 ‘외국인의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간접투자 제한 완화’ 사업의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라 같은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