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 변관식의 ‘춘경산수’.
소정 변관식의 ‘춘경산수’.
평화로운 산촌의 여름 햇살이 따갑다. 오른편 산밑에서 왼쪽의 야트막한 기슭으로 휘돌아나가는 개울물이 나직하게 이어지고, 빼곡히 늘어선 나무 사이엔 녹음이 절정을 이룬다. 정감 어린 움막집과 개울물은 간접조명처럼 뒷산을 환하게 껴안는다. 근대 한국화의 대가 청전 이상범 화백(1897~1972)의 ‘하경(夏景)’(31×40.5㎝)은 온 천지의 여름 기운을 마음껏 펼쳐 보여주는 작품이다.

청전을 비롯해 소정 변관식, 의재 허백련, 이당 김은호, 심산 노수현, 고암 이응로, 운보 김기창 등 한민족의 보편적 정서를 독특한 예술세계로 승화한 대가들의 한국화 20여점을 모은 ‘근대 한국화의 거장전’이 오는 30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이즈에서 열린다.

근대적 실경산수를 이끈 소정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품격있게 그려냈다. 1973년작 ‘내금강 단발령’은 소정이 한국적 회화를 정립하기 위해 분투했던 시절의 작품으로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구름과 안개, 수풀로 뒤덮인 해변을 소재로 한 ‘포운연수(浦雲烟樹)’, 금강산 삼선암의 절경을 그린 작품 또한 역작이다.

정형적인 화면 구도에 골격미가 돋보이는 필세를 통해 고고한 정신세계를 추구한 심산의 작품도 관람객을 반긴다. 특유의 암골미 넘치는 바위그림 ‘춘경산수’는 붓을 뉘어 주름진 형상을 표현하는 몰골준법을 활용한 그림으로 그의 독특한 화풍이 녹아 있다.

대표적인 근대 채색화가 이당의 예술적 열정도 만날 수 있다. 기러기의 고고한 자태를 사실적으로 그린 ‘노안도’는 일본 채색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국 채색화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민화와 산수화를 접목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운보의 작품도 여러 점 나온다.

개관 7주년을 맞은 갤러리 이즈의 한수정 대표는 “한국화 거장들의 빛깔과 미의식을 통해 고단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고 싶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02)736-666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