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터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을 보면 매안 이씨 가문 종가의 큰어른 청암부인이 손자 강모에게 들판 모습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매화낙지(梅花落地).’ ‘매화꽃이 떨어진 형상의 터’라는 뜻으로, ‘명성과 인망이 높은 자손들이 태어나는 명당’을 말한다. “꽃은 지라고 피는 것이라네. 꽃이 져야 열매가 열지”라는 청암부인의 말은 우리 조상의 명당에 대한 사고의 깊이를 보여준다.

풍수지리를 미신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풍수지리는 예로부터 이어진 생활철학이자 지형 및 날씨 등을 토대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학문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환경의 영향을 받아 인격과 품성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씨앗이라도 뿌려지는 땅의 토질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와 같은 이치로 환경은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배산임수(背山臨水·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형)’,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을 피하고 물을 구하기 쉬운 곳)’ 등 여러 생활풍수 지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조상 묘를 명당에 마련하고자 하는 모습은 이미 친숙하다. 최근엔 실내 인테리어, 가구 배치에도 풍수를 고려한다. 풍수지리는 일상을 넘어 기업 마케팅에도 활용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건설업계는 명당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었다. 유통업계에서는 풍수지리를 매장 구조 설계부터 상품 배치까지 다방면으로 널리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좋은 터’를 향한 바람은 오랜 시간 농경사회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역사 때문은 아닐까.

우리 회사는 창립 25주년을 맞이해 더 좋은 터전으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옛 혜민서 자리에 신사옥을 건립하고 있으며, 연말 이전할 계획이다. 혜민서는 조선시대 백성을 치료하며 애환과 아픔을 함께한 기관이다. 그래서인지 혜민서가 있던 장교지구(을지로3가) 신사옥 터가 남산의 기운이 내려와 모이는 명당이라고 한다.

명당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신한생명이 2016년 서울 중구 장교동 시대를 열면서 혜민서의 정신을 바탕으로 보험의 따뜻한 가치를 실현하고, 건강한 사회를 지탱하는 단단한 터가 되리라 다짐한다.

이성락 < 신한생명 사장 lsr58@shinh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