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인식차 여전…뿌리깊은 독도 문제에 징용배상도 '뇌관'

국교정상화 이후 50년 동안 한일관계는 끊임없는 부침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일제의 36년 식민통치가 남긴 깊은 내상은 양국이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에도 현재적 문제로 계속 돌출하며 양국 사이에 갈등의 전선을 그었다.

대표적인 3가지 '전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그리고 독도 문제다.

◇ "반인도 불법행위" vs "법적책임 불인정"…여전히 첨예한 위안부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오늘날 한일간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엇갈리는 쟁점이자 양국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자 매듭지어야 할 최대 숙제로 꼽힌다.

일본 정부나 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해 인도에 반(反)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 군위안부 문제의 본질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기본 인식이다.

따라서 양국간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볼 수 없으며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 정부는 군위안부 문제도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법적 책임을 끈질기게 회피해 왔다.

그러나 일본이 미흡하게나마 몇 차례 문제 해결 시도를 한 것은 결국 위안부 제도의 명백한 반인도적 성격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군위안부 모집·이송·관리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의 지난 1993년 8월 담화, 즉 '고노담화'다.

1995년에는 민간 모금을 기반으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해 위로금 지급을 추진했지만, 다수의 국내 피해자들은 배상 책임을 피하려는 수단이라고 비난하며 수령을 거부했다.

군위안부 문제가 외교 현안으로 재부상한 것은 2011년 우리 헌법재판소가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에 대한 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였다.

헌재 결정 후 한일은 한때 일본 총리의 사과와 정부 예산을 통한 보상 등을 담은 '사사에(佐佐江)안'을 논의하는 등 비공식 채널로 문제 해결을 모색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4월부터는 외교당국 국장간 협의를 열어 해결 방안을 모색해오고 있다.

총 8차례 협의를 통해 양국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진전'을 거뒀으나, 핵심적 쟁점에서는 여전히 의견차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노담화 검증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하에 보이는 일본의 우경화 추세를 감안하면 문제 해결 여건이 이전보다 녹록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후처리 근본 묻는 강제징용 피해배상
일본군 위안부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전후처리' 문제로 남아있는 것이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다.

1965년 청구권협정의 성격은 물론, 식민지배하 일제가 저지른 행위의 불법성에 대한 논란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파급력을 지니는 사안이다.

강제징용 피해배상은 지난 2012년 대법원이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본격적인 현안으로 부각됐다.

1940년대 일본 군수업체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은 후신인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들은 앞서 1·2심에서 패소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배상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이를 받아서 2013년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피고 기업들에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피고 기업들이 불복 절차를 밟아 현재 대법원에서 재상고심이 진행중이지만, 이미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사안이라 결론은 예상 가능하다는 관측이 많다.

일본 정부와 재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고민은 깊다.

우리 정부도 그간 강제징용자 보상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는 점에서다.

강제징용 미수금은 청구권협정 당시 우리가 제기한 대일청구요강에 들어 있었고, 일본군 위안부·원폭 피해자·사할린 동포 문제만 불포함됐다는 게 기존 정부 인식이었다.

그러나 파기환송 당시 대법원은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에서)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결국 한일협정 당시 식민지배 자체의 불법성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봉합한 것에 문제의 연원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고 손해배상 단계로 들어가면 일본 기업과 개인간의 민사소송을 넘어 양국간 전면적 외교 충돌로 번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일 정부와 시민사회가 피해자 개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외교 갈등도 피할 수 있는 창조적 해법을 조속히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日 끝없는 독도 야욕…한일 갈등 '꺼지지 않는 불씨'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 또한 국교정상화 이후 50년간 주기적으로 한일 간 긴장을 고조시켜 왔다.

양국이 타협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할 여지가 있는 과거사 사안과 달리, 독도 영유권은 '양보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한일관계에 인화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 영토로 영유권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본의 일방적 독도 영유권 주장은 일제의 한반도 침탈 역사와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인 1905년 망루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독도를 시마네현(島根縣) 소속으로 고시하고 무단 점유하기 시작했다.

'독도는 일제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첫 번째로 희생된 땅'이라는 우리 정부의 인식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일본은 한일회담 과정에서도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의뢰하자고 주장하는 등 쟁점으로 삼으려 했지만 우리 측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본은 '한국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며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시도를 굽히지 않았다.

특히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하자 일본도 수교 후 처음으로 ICJ 제소를 공식 제안하는 등 공세를 강화해 독도를 둘러싼 양국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흐름과 맞물려 독도 영유권 주장이 더 노골화되는 분위기다.

아베 내각은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2005년 제정한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3년 전부터 정부 대표를 파견해왔다.

일본 교과서에 담긴 독도 영유권기술도 해가 갈수록 증가·악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도 분쟁화를 막기 위한 우리 정부의 '조용한 외교' 기조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