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식·일본군 위안부·강제징용·독도…한일 갈등은 진행형
'사죄하고 뒤집고' 가다서다 반복…'정상회담없는' 비정상 상황
"日, 반성하는 태도가 기본…韓, 관용 베푸는 넓은 마음 중요"


<※ 편집자 주 = 오는 22일로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지 50년이 됩니다.

양국은 일본에 의한 35년간의 한국 강점이라는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이날 한일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양국은 경제·안보 등을 중심으로는 협력해 왔으나 일본의 어긋난 과거사 인식과 독도 도발로 첨예한 갈등도 공존해 왔습니다.

국교정상화 50년을 맞아 한일관계의 현주소와 바람직한 미래상 등을 담은 기획물 8꼭지를 일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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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일본은 우리에게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다.

반세기 전 이맘때 한일은 '1965년 체제'라고 불리는 새로운 '신작로'를 뚫었다.

35년간 일제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1965년 6월22일 한일협정에 사인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로 출발했다.

냉전시기 안보와 경제협력을 토대로 한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나라가 됐다.

교류와 협력의 틀은 문화, 인적교류 등 전방위로 확대되고, 그 깊이도 심화됐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와 일본을 제치고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 자리 잡았지만 한일 양국은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협력 파트너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극한 갈등의 연속이었고, 그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치유되지 않은 과거사'가 한일관계의 돌부리로 작용해왔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일본 지도급 인사들의 망언과 퇴행적 과거사 인식, 독도 도발 등으로 상처는 다시 덧나고, 이것이 한일관계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이 반복돼왔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과거사 갈등으로 취임 후 양자차원에서 단 한 차례의 정상회담도 하지 못한 사실이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올해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서도 양국은 관계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새로운 협력의 틀 마련을 위한 양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가다서다 역주행도…'롤러코스터' 한일관계
한일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 예비교섭을 시작으로 14년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1965년 마침내 한일협정을 체결, 국교정상화를 이뤘다.

그러나 그 이후 어느 한시기도 한일관계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극한 대결과 화해, 가다서기를 반복했고. 때로는 역주행을 하기도 했다.

1965년 한일협정에는 일본 측의 극한 반대로 일제의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어떤 사과나 반성의 문구도 담지 못했다.

당시 과거사 문제를 깔끔히 정리하지 못한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갈등의 씨앗이 됐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 지도자들의 왜곡된 역사인식,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갈등 전선이 곳곳에서 형성됐다.

이들 문제는 지도급 인사들의 망언이나, 교과서·방위백서·외교청서 등을 통한 역사적 사실 왜곡기술, 태평양 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 등의 형태로 불거져 나왔다.

역대 우리 정부는 정권 초반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 행보를 보였지만 이들 암초에 여지없이 걸려 '경색 국면'을 다음 정부에 물려주는 행태가 되풀이됐다.

'굴욕외교'라는 국내의 거센 비판에도 조국 근대화를 위해 일본과 손을 잡았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일본 한복판에서의 중앙정보부에 의한 '김대중 납치사건'(1973년), 재일 한국인 문세광에 의한 대통령 저격미수사건(1975년) 등으로 한일관계는 큰 위기를 맞았다.

특히 문세광 사건 당시에는 '단교' 직전까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에는 일제의 침략을 '진출'로, 3·1 운동을 '폭동'으로 표현한 일본의 고교 역사교과서 문제로 외교적 마찰을 빚었다.

노태우 정부 때는 민주화 바람에 힘입어 과거사 청산요구가 거세졌고,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표면화됐다.

김영삼 정부 때는 '고노담화'(1993년)와 '무라야마 담화'(1995년)라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지만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에토 다카미·江藤隆美 총무처장관) 등의 망언이 잇따르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강력히 반발하기도 했다.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 정부시대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이 갈등의 요소가 됐고, 노무현 정부 때는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조정 등 독도 도발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의 파동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2011년12월 교토에서 노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정면 충돌했고, 급기야 이듬해 8월 이 대통령의 전격적인 독도 방문으로 한일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정상회담 없는 정상화'…최악의 한일관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이끄는 현재의 한일관계는 국교정상화 반세기의 역사에서 최악의 수준이다.

한일 정상이 2013년초와 2012년말 각각 취임한 이후 다자회의에서는 몇 차례 얼굴을 맞댈 기회를 가졌지만 양자 차원의 정상회담은 한 번도 열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1970년대 문세광의 대통령 저격미수사건 당시 한일관계가 단교 직전의 위기까지 몰린 적이 있지만, 현재의 한일관계가 최악이라는데 누구도 토를 달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투트랙' 기조에 따라 과거사와 별도로 안보·경제 등 상호 호혜적 분야의 교류, 협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를 '정상회담 없는 관계 정상화'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비정상적 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최근의 한일관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로 정면으로 충돌했던 전임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총리로부터 이른바 '부의 유산'을 물려받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그릇된 역사인식, 우경화 행보 등 '역주행'이 더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과거 침략역사에 대해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등 망언 수준의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며, 검증작업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군에 의한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훼손, 부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정부가 아베 총리에게 새로운 사과를 하라는 것보다는 기존 고노담화를 비롯해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등을 올바르게 계승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하는 쪽이 더 가깝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중대 갈림길에 섰다.

지금의 '비정상적 상태'가 지속될 것인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갈등 소지를 해소하고 새로운 협력의 틀을 마련할 것인지 분기점에 와있는 것이다.

오는 22일 국교정상화 기념식과 종전 70주년 계기 8월 아베 총리의 담화가 관계개선을 위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일간 국장급에서 협의 중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전이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사죄 피로감' vs '망언 피로감'…"日, 언행 지침 가이드라인 세워야"
그동안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의 사과나 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3년 일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는 일본 총리로서의 첫 방한에서 "한일 양국 간에는 유감스럽게도 과거의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우리는 이것을 엄숙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과거를 반성하는 견지에서…"라며 사실상 처음으로 반성의 뜻을 내비쳤다.

이후에도 일본 지도자들은 물론 천황까지 나서 사과·반성의 뜻을 밝혔다.

특히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198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간 나오토 총리의 2010년 '간 담화' 등이 주요 이정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같은 역주행 행보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베 총리는 일본 사회 내부의 보수화 분위기를 바탕으로 전후체제를 확고히 탈피하겠다는 신념과 정략적 목적이 결합하며 전방위적 우경화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문제는 한일의 롤러코스터식 갈등이 반복, 심화되면서 한일 양국 국민의 상대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시민단체 '언론 NPO'가 지난 3∼5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 응답자의 72.5%가, 일본 응답자의 52.4%가 상대에 대해 '좋지 않다'는 답변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해 '사죄 피로감'을,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해 '망언 피로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교부 동북아 국장을 지낸 조세영 동서대 교수는 흔들리지 않는 한일관계를 위해 "고노담화나 무라야마 등을 기준으로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발언이나 행동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은 "지금 한일관계가 완전히 역사 문제에 매몰돼 있는데 이를 빨리 극복하고 협력의 공간을 찾아나가는 게 우리 미래에 필요한 전략"이라면서 "일본의 과거를 직시, 반성하는 태도가 화해의 기본이지만, 우리도 그런 자세에 관용을 베풀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