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보다 그냥 느끼세요”…금호미술관 '옅은 공기속으로' 전
어둑어둑한 전시실, 3면의 벽을 두른 스크린에 흑백 영상이 나온다. ‘어디도 아닌 곳에서’라는 작품 제목처럼 어딘지 불명확한 풍경과 함께 몽환적인 소리가 흘러나온다. 색이 없는 굴곡의 연속이 파도나 사막을 연상케 한다. 전시장 바닥에는 영상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뭉툭한 조형물이 불규칙하게 깔려 있다. 영상 감상용 의자이자 설치작품인 ‘자리’다. 관람객은 형체나 의미가 모호한 작품을 보고 듣고 만지며 자신만의 느낌에 집중한다.

서울 삼청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옅은 공기 속으로’ 전은 어둠과 빛, 안개, 소리 등을 이용하는 공감각적 전시다. 전시장 안의 색은 기본색인 흑백으로 제한했다. 색의 간섭을 최소화해 전시 공간이 주는 즉각적인 인상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음악예술가 카입(이우준)과 가구디자이너 하지훈 등 9명이 참여했다.

김상진의 ‘고지로 간다’ 전시장에는 소형 스피커 98개가 줄에 매달려 있다. 관람객이 들어가면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 대사가 나온다. 소리를 내는 스피커가 매번 바뀌며 빛을 반짝여 배우가 실제로 무대 이곳저곳을 오가며 말하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연극 대사가 끝나면 스피커 하나하나에서 98명이 각각 반주 없이 부른 애국가가 나온다. 합창이지만 박자와 음조가 제각각이라 기묘한 인상을 준다.
“해석보다 그냥 느끼세요”…금호미술관 '옅은 공기속으로' 전
권기범은 고무줄을 활용해 대형 벽화와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벽화는 고무줄 다발을 바닥에 떨어뜨려 순간순간을 촬영한 뒤 그 자취를 따라 그렸다. 중력과 우연성을 이용해 불확실하지만 자유로운 이미지가 나왔다. 흰 벽을 채운 검은 물감에서 리듬감 있는 힘이 느껴진다. 천장을 가로질러 팽팽하게 걸린 고무줄은 벽화와 이어지며 공간감을 극대화한다.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박기원은 흰색 조명 앞에 비닐 커튼을 여러 장 겹쳐 세웠다. 설치작품 ‘낙하’다. 앞에는 비닐로 만든 공기 충전재를 깔아 관람객이 그 위에 앉거나 누워 반투명 비닐 사이로 빛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윤옥 큐레이터는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 작품과 공간을 느낄 수 있는, 열린 해석이 가능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오는 8월23일까지. (02)720-5114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