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사옥
팬택 사옥
국내 벤처기업의 신화로 통했던 팬택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청산 수순을 밟기로 했다. 잇단 매각 작업이 무산된 데다 스마트폰 시장 경쟁구도에 비춰볼 때 회생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서다.

팬택은 26일 법정관리인인 이준우 대표이사 명의로 법원에 법정관리 폐지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 10개월간의 노력에도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적합한 인수 대상자를 찾지 못했다”며 “더 이상 기업으로서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돼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했던 팬택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전자회사 영업사원 출신인 박병엽 전 부회장이 1991년 4000만원으로 설립한 팬택은 2005년 매출이 3조원 규모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었다.

○물거품 된 벤처 신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이날 “다음달 5일까지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고 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다른 의견이 없으면 신청대로 (법정관리 종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산 말고는 길 없다"…팬택, 기업회생절차 포기
법정관리가 끝나면 파산 절차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 관계자는 “기업회생절차 폐지와 동시에 파산 선고를 내릴지 여부는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면서도 “만약 파산 선고를 내리지 않으면 팬택 측이 독자적인 생존 방안을 찾거나 그때 가서 또다시 파산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미 임직원조차 법정관리를 포기한 상황에서 (청산 외) 다른 가능성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파산 선고가 나오면 2주 이상, 3개월 이내 채권 신고를 받고 4개월 내 채권자집회가 열린다. 채권자집회에서 채권 변제 등이 마무리되면 법인 해산, 즉 청산이 완료된다. 자산 매각을 위한 소수 인원을 제외하고 현재 남아 있는 1400여명의 임직원도 직장을 잃게 된다. 이미 절반가량은 무급 휴직 상태다. 남은 자산은 특허권과 김포공장 등으로 평가액은 1500억원 정도다. 매각대금은 임직원 퇴직금 등 급여와 공익채권 상환에 우선 투입될 예정이다. 잔액은 기존 채권자에게 부채 비율에 따라 귀속된다.

○세 차례 매각 시도 무산

팬택은 전자회사 영업사원 출신인 박 전 부회장이 1991년 창업한 뒤 현대큐리텔 SK텔레텍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SK텔레텍을 인수한 2005년 팬택 계열 전체 매출은 3조원을 넘었다. 이후 무리한 글로벌 확장과 모토로라 ‘레이저폰’의 돌풍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은 팬택은 2007년 첫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2011년 졸업 이후엔 글로벌시장이 애플과 삼성의 양강 구도로 재편되면서 또다시 생존의 기로에 섰다. 2013년 박 전 부회장이 경영권을 내놨고 지난해 3월 2차 워크아웃에 이어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세 차례에 걸친 매각 시도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작년 11월 법원이 추진한 첫 공개 매각은 유찰됐고 올해 초 미국 자산운용사인 원밸류애셋매니지먼트와 진행한 수의계약도 인수대금 미납으로 무산됐다. 지난 4월 2차 공개 매각에는 국내 업체 2곳과 미국계 1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으나 법원이 인수능력이 없다고 판단, 후속 절차를 중단했다. 팬택은 전 임직원이 고용 승계를 포기하는 등 매각을 위한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인수 희망기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호기/김인선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