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수영장에서 생긴 일
수도권의 근사한 수영장에서 생긴 민망한 일이었다. 한 노인이 그만 풀에서 ‘큰 것’을 실례해버렸다. 소독약과 정수시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국제 규격의 풀을 새로 채우는 데 드는 물값이 5000만원이라고 했다. 곧 지역의 화젯거리가 됐다. 아마 ‘작은 것’ 정도의 실례는 일상적일 것이란 수군거림도 있었다. “365일 공짜 지하철에, 수영장도 경로우대로 반값 만들어 애들 기피하게 만들고 생돈 5000만원 쓰냐”는 푸념까지 들렸다. 젊은 세대의 이 불만을 과연 나무랄 수 있을까.

노인요양원을 오래 운영해온 내 주변의 지적은 고령사회의 다른 모습이다. 의사 판단 능력이 사실상 상실된 상노인까지도 선거라면 무조건 불러내고 당연히 투표장으로 향하게 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온종일 노인들과 함께 보내는 그의 문제제기였기에 더 공감이 갔다.

속도붙은 노인票 매수 경쟁

고령사회 한국의 걱정거리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좋은 전통인 경로문화가 실상과는 반대로 제도로만 요란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든다. 실내수영장에서 생긴 그 ‘사고’도 경로우대와 무관치 않다. 반값이라 하니 지하철의 고령자들만큼이나 수요를 만들어낸다. “자라나는 세대들 많이 이용하게 고령층은 다른 취미로 유도하자”고 말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원래부터가 ‘고얀! 너는 늙지 않을 테냐’는 한마디면 대화 자체가 끊어지는 우리 사회였다. 수영장이 충분치 못하다면 미래 세대에 우선권을 주는 게 전통의 미덕에 더 맞지 않을까. 고령자들을 억지로 막아도 안되지만 제값을 내게 해 수요 정도는 조절하는 게 맞다. 틀에 박힌 노인우대가 넘칠 지경이다.

몸도 못 가누는 노인들도 으레 투표장에 가야 한다는 건 정치 과잉의 단면이다. 누가 “노인들은 투표일 쉬시라”고 했다가 뭇매도 맞았지만 현실이 그렇다. 노인표(票) 쟁탈 경쟁은 갈수록 더해진다. 기초연금도 그렇게 나왔다. 국민연금이 고령자에 유리한 것이나, 의료복지 확대도 다 그렇다. 그들 손엔 당장 표가 있지만 미래 세대엔 없다. 정치인들은 이 점을 아주 잘 안다.

미래 세대가 다 떠나가버리면…

작위적인 경로정책들이 결국은 표와 거래된 선심책은 아닌가. 무상 보육과 교육이 과속도라지만 고령층 복지는 더하다. 복지정책을 평가했더니 노인·장애인 쪽은 90.5점인 데 반해 보육기반 쪽은 68.8점이라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분석은 무엇을 말하나.

누구든 부모가 있고, 모두가 노인이 된다. 하지만 나라 살림이 뻔하다.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사회의 발전엔 단계도 있다. 다음 세대에 대한 투자는 뒷전인 채 노인복지에만 치중하면 어떻게 될까. 가정이든 국가사회든 근본은 같다. 지하철 무임승차도, 기초연금도 일단 시행하면 못 돌린다. 고령층 복지가 충만해질수록 경제는 활력을 잃고 사회는 늙어 간다. 할아버지 세대 봉양이 버거운 손자들은 해외로 튈 것이다. 기업들도 세금부담을 피해 여차하면 해외로 달아날 것이다. 이상적인 프로그램들은 노인천국을 앞당길 테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재정이 메말라가고 국가부채가 치솟으면 퇴직공무원 천국인 그리스 꼴이 나지 않을까.

정치인들은 손쉬운 표인 노인층 복지를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된 경로정책이라는 표퓰리즘을 누가 바로잡나. 현실에 맞는 경로우대라야 한다. 세대 간에 일방적 희생과 부채의식을 막아야 제대로 된 노인공경 문화도 뿌리내릴 수 있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