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게임하다 주먹다짐…술 취한 상사의 부적절 발언…화합 위한 워크숍, 되레 화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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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워크숍의 계절
PT 준비하느라 밤새고, 가서는 술마시느라 밤새고 차라리 회사서 일할래ㅠ
토론 준비·경쟁사 동향 분석…업무 줄여 주는 것도 아닌데…
워크숍 때문에 야근만 늘어
비행기 태워준다면 '대환영'…해외워크숍은 출석률 100%
자발적으로 현지시장 분석도
PT 준비하느라 밤새고, 가서는 술마시느라 밤새고 차라리 회사서 일할래ㅠ
토론 준비·경쟁사 동향 분석…업무 줄여 주는 것도 아닌데…
워크숍 때문에 야근만 늘어
비행기 태워준다면 '대환영'…해외워크숍은 출석률 100%
자발적으로 현지시장 분석도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 화사한 날씨에 어디든 떠나려는 직장인이 많다. 지난 1~5일 이어진 황금연휴는 끝났지만 오는 25일 석가탄신일이 월요일이어서 또다시 3일 연휴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주말에 회사 워크숍이 열린다면? 누군가에게 황금 같은 주말이 누군가에겐 ‘악몽’으로 변할 수도 있다. 직장 동료와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회사가 마련한 워크숍 자리가 성희롱과 멱살잡이로 얼룩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워크숍을 화합을 꾀하는 자리로 마련하기보다 10시간 이상 마라톤회의로 진행하는 곳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벌써 ‘어떻게 하면 워크숍에 빠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김과장 이대리’가 많다. 워크숍을 앞둔 그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업무보다 힘든 워크숍 준비
한 정보기술(IT)업체에 다니는 최모 대리(31)는 15일로 예정된 팀 워크숍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팀의 워크숍은 서울 근교에서 가볍게 친목을 다지는 자리로 마련됐다. 하지만 올해 3월 깐깐한 미국인 팀장이 오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워크숍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토론하는 자리’라는 게 그의 확고한 철학이었다. 기간도 당일치기에서 2박3일로 늘렸다.
팀장은 모든 준비를 최 대리에게 맡겼다. 하반기 팀 운영 방향에 대한 토론준비, 팀원 역량 증진을 위한 해외 트렌드 및 경쟁사 동향 분석, 외부 전문가 강연…. 프로그램을 짜고, 자료 만드느라 며칠째 밤을 새우고 있다. 그렇다고 평소 업무에서 빠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상 업무는 일과시간 중 처리하고 워크숍 준비는 저녁식사 후에야 시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워크숍 준비 때문에 야근까지 하고 피곤해서 다음날 잠깐 졸았더니 ‘놀러 가는 거 준비한다고 업무를 소홀히 하느냐’는 핀잔까지 들었어요. 뭐라고 항변할 수도 없고 웃고 말았죠.”
한 식품회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8)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 과장은 5월 하순 열리는 워크숍에서 발표하기 위해 1분기 실적분석 보고서와 2분기 사업계획안을 작성하고 있다. 이 회사의 워크숍은 1박2일 동안 밤샘회의로 이어진다.
지난해에는 아침부터 오후 9시까지 계속 팀별 보고를 했고, 이에 대한 토론도 했다. 밤 10시부터는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우리 회사 문화가 매우 보수적이에요. 워크숍 때 밤 술자리에서 빠져 혼자 방으로 들어가면 윗분들로부터 한소리 듣기 십상이거든요. 올해는 방법만 있으면 도망가고 싶네요.”
‘친목 파괴’ 워크숍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김모 대리(32)는 지난해 워크숍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린다. ‘단합하자’는 자리가 성희롱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한 50대 임원이 밤 12시가 넘어가자 여성 직원들에게 부적절한 스킨십을 했다. 외모가 출중한 한 여직원에게는 “내가 이혼하면 결혼해줄래”라는 말까지 했다. 이 임원의 행동을 말려야 할 바로 아래 부장들이 “껄껄” 웃어넘기는 모습에 김 대리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남자 직원들이 들어도 얼굴이 화끈해질 문제 있는 발언을 아무렇게나 하고, 받아들이는 회사 문화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국내 한 통신사 홍보팀에 근무하는 민모 과장(38)은 비용도 아낄 겸 옆 부서 법무팀과 공동으로 간 워크숍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폭탄주를 몇 잔 돌린 뒤 팀별 윷놀이를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홍보팀 직원이 순서를 착각하거나, 윷을 잘못 던져 멀리 떨어질 때마다 법무팀 소속 직원들이 법률용어까지 들이대며 잘못을 지적하고 나선 것. 분위기가 영 이상해졌다. 급기야 술김에 폭발한 홍보팀장이 법무팀장의 멱살을 잡기까지 했다. 흥분한 두 사람은 팀원들을 내버려둔 채 밖으로 나가 큰소리로 한참을 더 싸웠다. 민 과장은 “술마시고 하는 게임에서 법률용어까지 들먹인 법무팀의 행태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며 “화합하자고 마련한 워크숍 때문에 오히려 다른 팀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기다려지는 해외워크숍
모든 직원이 한마음으로 ‘꼭 가고 싶다’고 열망하는 워크숍도 있다. 해외에서 열리는 워크숍이다.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업체 이디야는 매년 한 차례 전 직원이 참석하는 해외워크숍을 연다. 문창기 회장이 2009년부터 직원 복지를 위해 해외워크숍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중국 상하이를 다녀왔고, 올해는 14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전 직원이 홍콩과 마카오에 다녀올 계획이다. 이 회사 김모 팀장은 “230명의 직원이 조를 나눠 차례로 여행한다”며 “일에 대한 강요가 없는 완벽한 치유여행”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보고서를 자발적으로 작성해 회사에 보답하기도 했다. 2013년 열린 태국 워크숍에서 직원들이 현지 커피시장을 조사한 뒤 보고서를 만들었다.
한 IT 관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고모씨(32)는 올초 4박5일간 태국 파타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최근 한 벤처캐피털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게 되면서 사장이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을 위해 통 크게 해외워크숍을 보내준 것이다. 매년 수도권 펜션에서 워크숍을 열 때는 제사, 병원검진 등의 각종 이유를 들어 빠졌던 직원들이 이번엔 100% 출석했다.
휴양지에서의 워크숍은 직원 사기를 단숨에 충전시켰다. 직원의 상당수가 20~30대 젊은 층이다 보니 체력이 넘쳤다.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때아닌 휴가를 즐겼다. 고씨는 “낮에는 휴양지와 맛집 곳곳을 찾아 돌아다녔고, 밤에는 숙소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대학 동아리모임 때처럼 신나게 놀았다”며 “동료와도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아 기억에 남는 워크숍이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이 회사 사장은 “올해 실적을 초과 달성하면 내년엔 터키로 워크숍을 가자”고 약속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 특별취재팀
송종현 산업부 차장(팀장) 이호기(IT과학부) 강현우(산업부) 오동혁(증권부) 박한신(금융부) 김대훈(정치부) 김인선(지식사회부) 박상익(문화스포츠부) 강진규(생활경제부) 홍선표(건설부동산부) 이현동(중소기업부) 기자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벌써 ‘어떻게 하면 워크숍에 빠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김과장 이대리’가 많다. 워크숍을 앞둔 그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업무보다 힘든 워크숍 준비
한 정보기술(IT)업체에 다니는 최모 대리(31)는 15일로 예정된 팀 워크숍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팀의 워크숍은 서울 근교에서 가볍게 친목을 다지는 자리로 마련됐다. 하지만 올해 3월 깐깐한 미국인 팀장이 오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워크숍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토론하는 자리’라는 게 그의 확고한 철학이었다. 기간도 당일치기에서 2박3일로 늘렸다.
팀장은 모든 준비를 최 대리에게 맡겼다. 하반기 팀 운영 방향에 대한 토론준비, 팀원 역량 증진을 위한 해외 트렌드 및 경쟁사 동향 분석, 외부 전문가 강연…. 프로그램을 짜고, 자료 만드느라 며칠째 밤을 새우고 있다. 그렇다고 평소 업무에서 빠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상 업무는 일과시간 중 처리하고 워크숍 준비는 저녁식사 후에야 시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워크숍 준비 때문에 야근까지 하고 피곤해서 다음날 잠깐 졸았더니 ‘놀러 가는 거 준비한다고 업무를 소홀히 하느냐’는 핀잔까지 들었어요. 뭐라고 항변할 수도 없고 웃고 말았죠.”
한 식품회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8)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 과장은 5월 하순 열리는 워크숍에서 발표하기 위해 1분기 실적분석 보고서와 2분기 사업계획안을 작성하고 있다. 이 회사의 워크숍은 1박2일 동안 밤샘회의로 이어진다.
지난해에는 아침부터 오후 9시까지 계속 팀별 보고를 했고, 이에 대한 토론도 했다. 밤 10시부터는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우리 회사 문화가 매우 보수적이에요. 워크숍 때 밤 술자리에서 빠져 혼자 방으로 들어가면 윗분들로부터 한소리 듣기 십상이거든요. 올해는 방법만 있으면 도망가고 싶네요.”
‘친목 파괴’ 워크숍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김모 대리(32)는 지난해 워크숍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린다. ‘단합하자’는 자리가 성희롱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한 50대 임원이 밤 12시가 넘어가자 여성 직원들에게 부적절한 스킨십을 했다. 외모가 출중한 한 여직원에게는 “내가 이혼하면 결혼해줄래”라는 말까지 했다. 이 임원의 행동을 말려야 할 바로 아래 부장들이 “껄껄” 웃어넘기는 모습에 김 대리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남자 직원들이 들어도 얼굴이 화끈해질 문제 있는 발언을 아무렇게나 하고, 받아들이는 회사 문화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국내 한 통신사 홍보팀에 근무하는 민모 과장(38)은 비용도 아낄 겸 옆 부서 법무팀과 공동으로 간 워크숍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폭탄주를 몇 잔 돌린 뒤 팀별 윷놀이를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홍보팀 직원이 순서를 착각하거나, 윷을 잘못 던져 멀리 떨어질 때마다 법무팀 소속 직원들이 법률용어까지 들이대며 잘못을 지적하고 나선 것. 분위기가 영 이상해졌다. 급기야 술김에 폭발한 홍보팀장이 법무팀장의 멱살을 잡기까지 했다. 흥분한 두 사람은 팀원들을 내버려둔 채 밖으로 나가 큰소리로 한참을 더 싸웠다. 민 과장은 “술마시고 하는 게임에서 법률용어까지 들먹인 법무팀의 행태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며 “화합하자고 마련한 워크숍 때문에 오히려 다른 팀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기다려지는 해외워크숍
모든 직원이 한마음으로 ‘꼭 가고 싶다’고 열망하는 워크숍도 있다. 해외에서 열리는 워크숍이다.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업체 이디야는 매년 한 차례 전 직원이 참석하는 해외워크숍을 연다. 문창기 회장이 2009년부터 직원 복지를 위해 해외워크숍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중국 상하이를 다녀왔고, 올해는 14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전 직원이 홍콩과 마카오에 다녀올 계획이다. 이 회사 김모 팀장은 “230명의 직원이 조를 나눠 차례로 여행한다”며 “일에 대한 강요가 없는 완벽한 치유여행”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보고서를 자발적으로 작성해 회사에 보답하기도 했다. 2013년 열린 태국 워크숍에서 직원들이 현지 커피시장을 조사한 뒤 보고서를 만들었다.
한 IT 관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고모씨(32)는 올초 4박5일간 태국 파타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최근 한 벤처캐피털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게 되면서 사장이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을 위해 통 크게 해외워크숍을 보내준 것이다. 매년 수도권 펜션에서 워크숍을 열 때는 제사, 병원검진 등의 각종 이유를 들어 빠졌던 직원들이 이번엔 100% 출석했다.
휴양지에서의 워크숍은 직원 사기를 단숨에 충전시켰다. 직원의 상당수가 20~30대 젊은 층이다 보니 체력이 넘쳤다.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때아닌 휴가를 즐겼다. 고씨는 “낮에는 휴양지와 맛집 곳곳을 찾아 돌아다녔고, 밤에는 숙소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대학 동아리모임 때처럼 신나게 놀았다”며 “동료와도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아 기억에 남는 워크숍이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이 회사 사장은 “올해 실적을 초과 달성하면 내년엔 터키로 워크숍을 가자”고 약속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 특별취재팀
송종현 산업부 차장(팀장) 이호기(IT과학부) 강현우(산업부) 오동혁(증권부) 박한신(금융부) 김대훈(정치부) 김인선(지식사회부) 박상익(문화스포츠부) 강진규(생활경제부) 홍선표(건설부동산부) 이현동(중소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