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팬텀’.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팬텀’.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겉보기엔 더없이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임선혜)의 현란한 성악 기교, 절정의 기량을 가진 발레 무용수(김주원 알렉스)의 격정적인 파드되(2인무), 1890년대 파리 오페라극장과 거리를 재현한 정교하고 웅장한 영상과 무대세트, 대형 오페라에서나 봄 직한 호화로운 의상의 향연…. 이만한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펼쳐내는 무대는 흔치 않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팬텀’에는 반짝반짝 갈고닦은 ‘구슬’로 가득하다. 문제는 이 구슬들을 제대로 꿰어 ‘보배’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 한 편의 뮤지컬이 아니라 갈라쇼나 버라이어티쇼를 보는 듯하다. 뮤지컬에서 구슬을 꿰는 실이라 할 만한 대본과 음악이 부실한 탓이다.

팬텀, 화려한 무대 '눈길'…빈약한 드라마 '실소'
1991년 초연된 팬텀의 원작은 프랑스 추리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1910년)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동명 뮤지컬(1987년 초연)과 같다.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웨버 작품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을까. 원작을 뮤지컬 문법에 충실하게 재구성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과는 달리 팬텀은 개작(改作) 수준이다.

결과는 개악(改惡)이다. 그럴듯한 현대판 ‘미녀와 야수’가 아니라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펼쳐지다 원작에 없는 주인공 팬텀의 유년시절과 부모 이야기부터는 삼류 드라마로 흐른다.

팬텀의 흉측한 얼굴이 불륜의 소산이었다니…. 청춘남녀가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고 여자가 임신을 했는데 알고보니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게 밝혀지는 장면. 무대는 심각한데 객석에선 실소가 터진다.

여주인공 크리스틴의 젊은 연인 라울의 이름을 특정 샴페인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샹동 백작’으로 바꾼 부분은 좀 심하다.

등장인물들이 샴페인병을 들고나와 “샴페인, 샴페인”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간접광고(PPL)가 이런 식으로 작품의 격을 떨어뜨려서는 곤란하다.

음악에는 통일성과 일관성이 부족하다. 30곡에 달하는 ‘넘버’(삽입곡)가 너무 많다. 주요 넘버는 한결같이 고음을 내지르는 것으로 끝난다. 한국 초연에선 노래 잘하는 한국 배우들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넘버 4곡이 추가됐다. 순간순간은 빛나지만 전체적으로 어우러지지 않는다. 배우들의 열창이 허약한 음악적 설계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종잡을 수 없는 드라마같이 파편이 돼 흩어진다.

주요 배역이 차례로 대표곡의 하이라이트를 부르는 갈라식으로 커튼콜이 길게 이어졌다. 어정쩡하고 여운 없는 결말을 만회하기 위해 일종의 관객 서비스인 커튼콜 무대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도 그랬다. 오는 7월26일까지, 5만~14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