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전략 없는 중기정책 40년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새로운 공약을 쏟아냈다. 정부 부처들은 이를 구체화해 잇따라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그 결과 현재 시행되는 지원정책 종류만 550여가지에 이른다. 40년간 정부가 이 분야에 쏟아부은 돈을 합치면 200조원을 넘는다. 중소기업 정책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을 지원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대기업 중심 발전전략을 택한 한국에서는 더욱 필요하다는 얘기도 한다. 일리 있는 설명이다. 미국도 일본도 다 지원한다는데….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그 많은 돈을 지원했는데 지금도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공한 중소기업들은 진짜 정부 지원 덕을 봤을까. 페이스북 같은 회사가 정부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500개가 넘는 지원정책

고민이 이어지던 어느 날 중견 건설자재업체 K사장을 만날 일이 있었다. 그는 작년까지 경쟁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했다. 경영난에 처한 A사가 몇 년째 제품을 헐값에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A사는 채권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연명하고 있었다. 채무상환이 연기되고, 이자부담도 크게 줄어 싼값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K사장은 이런 상황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작년 말 A사를 인수해 버렸다. 이후 출혈경쟁은 사라졌다. K사장은 “경영난에 처한 회사가 멀쩡한 기업을 어렵게 만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도 했다. 각종 정책자금으로 연명하는 기업이 많다는 얘기였다.

정책자금을 들여다보니 신용보증이 눈에 띄었다. 정부기관이 보증을 서고, 기업들은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제도다. 취지는 좋지만 규모가 문제였다. 각종 보증을 합치면 이 금액은 국내총생산(GDP)의 6%가 넘는다. 대만의 네 배 가까운 수준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신용보증 공급 규모를 늘려온 탓이다.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과도한 신용보증을 통한 자금 공급은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떨어뜨리고 퇴출을 어렵게 한다. 결국 산업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역동성을 상실한 중소기업계

신용보증만이 아니다. 500개가 넘는 지원책 중 상당수가 산업전략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만들어졌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때로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어떤 때는 국회가 덥석 법을 만들기도 했으니까.

정책이 많아 수혜를 받는 중소기업들이 늘어나면 좋은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사례를 보면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대기업에 대한 정책 지원은 외환위기 때 끝났다. 경쟁력을 갖춘 비결은 정부 지원이 아닌 구조조정이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30대 그룹 중 16개가 퇴출됐다. 이를 기점으로 내실을 강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 국내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적이 없다. 500개가 넘는 지원정책이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일리 있게 들린다.

이런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는 없다.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을 한꺼번에 퇴출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1975년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 제정 이후 40년을 지속해온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진지하게 돌아볼 때가 됐다.

김용준 중소기업부 차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