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디에서 누가 생산했을까
지난 주말 시골 5일장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무르익는 봄에 맞춰 봄동과 냉이, 두릅 등 각종 나물이 즐비했다. 그 옆에는 여러 곡식과 한약재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진열된 농산물마다 생산지가 이름표처럼 붙어 있었다. 황기는 중국에서 왔구나. 호두는 먼 미국에서, 고사리는 북한에서 왔음을 알 수 있게 말이다. 농산물의 생산지는 상품을 선택하는 데 또 하나의 기준이 돼주었다.

공산품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제품을 고를 때 습관적으로 뒷면을 보는 것 같다. 특히 대형마트에 가면 식품의 뒷면을 유심히 보는 젊은 주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유통기한뿐만 아니라 원산지와 성분, 유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 여부, 제조원과 판매원까지도 확인한다.

왜 이렇게 포장 뒷면을 꼼꼼히 살펴볼까. 거기 적힌 정보들이 구매자 및 그 가족의 안전과 직결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것이 소비자의 알 권리이기도 하다. 믿고 살 수 있을 만한 회사 또는 국가에서 품질 좋은 제품이 만들어졌는지 정보 확인이 필요한 이유다.

과거엔 품질보다 고가의 브랜드나 수입품만을 선호했다. 하지만 요즘엔 과시보다 실속을 중시하고, 발품과 정보력을 활용해 좋은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이렇듯 요즘은 브랜드를 보고 제품을 구매하던 시기를 넘어 제품의 본질을 생각하는 합리적인 소비 패턴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생산과 판매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생산과 판매, 유통 등이 분리됐다. 또 각 영역에 맞게 전문화된 시스템이 보편화됐다.

우리 회사도 브랜드 없이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화장품과 의약품, 건강기능식품을 연구개발해 생산하는 기업 간 거래(B2B) 회사다. 하지만 우리의 고객은 거래처와 더불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항상 반 보 앞서 나간다는 정신으로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품질의 제품은 소비자가 만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원산지와 성분, 제조원과 판매원 등을 꼼꼼히 확인하고 구매하는 소비자의 움직임이 책임 있는 기업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만든 제품은 품질부터 다르다”는 평을 들을 때 가장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오늘도 화장품 뒷면의 제조원에서 우리 회사 이름을 본 뒤 믿고 구매한 많은 고객이 있음을 알기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반 보 앞서가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 한다.

윤동한 < 한국콜마 회장 yoon@kolma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