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의리 4인방
‘의리’는 조폭의 단어다. 조폭이 아니더라도 특정한 조직의 내부 응집력에 대해 말할 때 의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 사람 의리 있다”는 말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무언가를 희생한 사례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이 독특한 단어를 통해 공동체의 내밀한 규칙이나 관습, 묵계를 지키는 어떤 행위를 상상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해 의리를 지켰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국가에 대해서는 충성심이나 애국심이 있을 뿐이다. 애교심이나 애사심도 유사한 경우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으로 의리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관계에 한정해서만 이 말을 쓴다. 그런 의미에서 의리는 공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책무가 아닌 개인들 간의 은밀한 협력 관계를 일컫는다.

어떤 기업은 ‘의리’라는 단어를 사훈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몇 번의 불미스런 사고가 터진 뒤 그 사훈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회사는 조폭과는 분명 구성 원리가 다르므로 직원의 행동규범으로 의리를 내세우는 것은 맞지 않는다. 충직이라는 말은 조직에 대한 헌신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냐, 조직이냐 하는 점에서 의리와 충직은 적용 범위가 크게 다르다.

성완종의 최후 진술에 소위 의리 4인방이 올라 화제다.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김태흠 4명이 그들이다. 성완종이 말하는 의리는 무엇일까. 조폭들이 의리를 지켰다고 말할 때는 주로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자백 아닌 침묵을 지킨 경우를 말한다. 이때의 의리는 자백 즉, 배신의 반대말이다. 성완종 메모에서의 의리도 필시 사적인 의리임이 분명하다. 전후 문맥을 보면 국회의원으로서 성실성이나 충직성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많은 국회의원은 서로를 형님 동생으로 부른다. 의원으로서의 공적 관계를 우회하는 은밀하고도 강력한 사적 관계가 구축돼 있다는 증좌다. 그게 국회 타락의 한 원인이다. 부패동맹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의리는 공적 규칙 혹은 법규에 대한 위반이나 반칙을 암시한다. 청탁을 들어주었거나, 금지된 지원과 지지를 은밀하게 우회하는 경우에 의리는 강화된다. 충직의 의무를 위반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내부 폭로라든가 양심의 저항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그러나 의리를 지키는 것은 그 반대다. 법이나 공의(公義)를 위반하면서까지 은밀한 청탁을 들어주었던 경우를 성완종은 의리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 갑자기 그게 궁금해진다. 그들은 어떻게 서로를 도왔는지.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