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3캔을 훔친 게 아직 경미한 사건이지만 이게 커지면 큰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방 차원에서 형사 법정을 방청하고 소감문을 작성하도록 부과 과제를 내는 건 어떨까요.”

13일 오후 2시30분께 서울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중법정 106호. 법복을 입은 청소년 8명이 특수절도 및 특수절도 미수 소년사건에 관해 토론 중이었다. 이들은 청소년참여법정에 배심원 자격으로 참석한 중고등학생들로 경미한 비행사건을 심리한 뒤 17시간 이내에서 적절한 부과 과제를 선정해 판사에게 건의하는 역할을 맡는다. 청소년참여법정은 소년보호재판 조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절차다. 무작위로 추천된 전국의 중3~고2 학생들 중 총 9명까지 재판에 참여한다. 정식 재판은 아니지만 비행소년이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면 재비행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해 심리불개시결정(사건 종료)을 내린다. 과제를 이행하지 않으면 재판을 계속한다. 참여인단으로 참여한 학생들에겐 교통비와 자원봉사 시간을 받는다. 서울가정법원을 비롯한 전국의 지방법원에서 비행소년의 재판에 또래 학생들의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 2010년 제도를 도입했다.

이날 재판장에 오른 사건은 한 남학생(16)이 친구와 길에 세워진 트럭에서 맥주 3병을 훔치고, 자전거를 훔치기 위해 돌로 자물쇠를 내려치다 미수에 그친 내용이었다. 서울 경신중 고광삼 교사의 진행으로 사건 조사가 이루어졌다. 고씨가 부모님과 함께 출석한 사건 본인인 남학생에게 질문을 했고, 배심원 청소년들은 종이에 꼼꼼하게 메모를 해가며 들었다.

청소년 참여인단들은 이날 비행소년에게 일기장 쓰기, 청소년 참여인단 활동, 자기관찰 보고서와 인생설계서 쓰기, 인터넷 중독 예방 교육받기, 하루 한번씩 후회하는 일 메모지에 붙이기 등의 과제를 판사에게 건의했다. 재판을 맡은 엄기표 서울가정법원 소년단독2부 판사는 청소년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비행소년에게 5가지 부과과제 이행을 명령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