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남편의 비밀
당신이라면 어쩌겠는가. 남편이 출장 간 사이에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이라고 쓰여진 편지를 발견했다면,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망설이다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면, 그리고 끔찍한 비극의 역사를 껴안고 평생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세 아이의 엄마이자 완벽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온 여인에게 남편의 비밀은 감당하기 어려운 돌덩이다. 죄 지은 남편을 처벌받게 해야 하는지, 여태껏 속여온 괘씸죄로 내쫓아야 하는지, 수십년간 속죄하며 혼자 괴로워했다니 용서해야 하는지 심정이 복잡해진다. 그 섬세한 내면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해 10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운 게 소설 《허즈번드 시크릿(The Husband’s Secret)》이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이 소설은 촘촘한 스토리와 중독성 있는 문장 덕분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인생 최대의 위기에 숨막히는 반전의 묘미까지 더했다. 곧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부활절 직전의 고난주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더욱 상징적이다.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명언처럼 ‘실수는 사람의 영역이고 용서는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또 다른 남편의 사연도 있다. 나치의 눈을 피해 체코의 유대인 아이들을 영국으로 탈출시켰던 주식중개인 이야기다. 그는 1939년 여덟 번의 기차 편으로 669명이나 되는 소년소녀를 살려냈다. 그러나 250명을 태운 아홉 번째 열차는 나치에 발각돼 실패했다. 이 죄책감 때문에 아이들을 구한 사실조차 평생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 BBC방송으로 알려져 ‘영국의 쉰들러’로 추앙받은 그는 아내에게도 49년간이나 비밀로 간직했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사연만 있는 건 아니다. ‘남편의 비밀번호가 대학 때 첫사랑 전화번호여서 약올랐다’ ‘남편 차를 청소하다가 비밀통장을 발견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등 아내에게 들킨 남편들의 비밀은 많다. 남편 인터넷 비밀번호를 찾다가 ‘애인 이름은?’이라는 항목에 자기 이름을 썼더니 맞더라는 ‘귀요미 아줌마’의 얘기는 애교스럽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지만 현관만 들어서면 초딩 귀염둥이로 바뀌는데 이걸 시댁 식구들은 절대 모른다는 ‘자랑질’도 있다.

하기야 ‘남편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응답이 33.6%라는 설문 결과를 보면 세상 아내들에게도 소소한 비밀은 다 있게 마련이다. 《허즈번드 시크릿》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듯이 또 어떤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기도 한다. 그런 게 인생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