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중국 잘 안다고 착각해 중국시장서 실패"
지난 27일 오후 베이징 조양구에 있는 장강경영대학원(장강상학원)에서 만난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66·사진)에게선 원로 교수의 연륜 보다는 도전정신이 느껴졌다. 조 교수는 작년 초 서울대를 정년퇴임 한 이후 그해 7월부터 장강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전략을 강의하고 있다. 또 중국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의 의뢰로 중국 국유기업의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모델 개발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정립한 이론을 중국에서 현실에 적용할 기회를 얻었다”며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교수와 중국의 인연은 1990년에 시작됐다. 대련에 있는 동북재경대학의 요청으로 일주일간 초청강연을 하기 위해 중국을 처음 찾았다. “강연이 끝난 후 백두산 관광을 했는데, 천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확 열리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때 이후 조 교수는 틈만 나면 중국을 찾았고, 2006년부터는 방학 기간동안 장강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2012년 안식년때는 북경어언대학에서 아들뻘 되는 학생들과 함께 12주과정의 어학코스를 듣기도 했다. 그는 “1990년 이후 여권을 세 개째 쓰고 있는데 중국 입국 도장이 180개 정도가 찍혀있다”고 말했다.

작년 초 서울대를 정년퇴임 한 직후 장강경영대학원으로부터 경영전략 강의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다. 출국 준비를 하고 있던 작년 5월 중국 국무원으로부터 연구용역을 하나 맡아 달라는 연락이 왔다. “국무원에서 보낸 공문을 보니 중국 국유기업의 경영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는 3년짜리 프로젝트였어요. 중국이 자국 국유기업 평가 모델 개발을 저같은 외국인 교수에게 맡긴다는게 놀라웠어요.”

이후 조 교수는 국무원 고위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왜 나를 선택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조 교수가 지난 10년간 중국의 각종 컨퍼런스에서 한 발언을 유심히 지켜봐왔다. 중국만의 독자적인 기업 평가 모델을 만드는데 조 교수의 이론이 적합하다는 판단이 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국에서 ‘인생 2모작’을 시작했지만 주된 관심은 여전히 한국기업과 한국경제라고 조 교수는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못 거둔 이유에 대해 조 교수는 “한국 기업인들은 중국과 한국이 여러모로 비슷해 중국을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의 경우 중국과의 문화적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중국을 열심히 연구하고, 중국의 문화를 100% 받아들이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최근 샤오미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들의 부상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경영전략을 강의할때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 기업을 잘 연구하면 중국 기업들이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얼마 후 이런 말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중국 기업들은 이미 미국 기업들을 벤치마킹해 미국 기업 못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화웨이와 샤오미 등과 같은 중국 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