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K 前지사장 점찍었다…'패션왕' 꿈꾸는 신진디자이너

/ 나인틴에이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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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문정욱 나인틴에이티 디자이너(사진)는 모델 못지않은 장신에 검은 뿔테안경을 걸쳤다. 디자이너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세련된 제스처 같은 게 없었다. 대신 따스하고 유쾌한 에너지와 편안한 웃음을 지녔다.

그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내려다보이는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전도유망한 신진 디자이너들이 모인 곳. 치열한 경쟁을 뚫고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입주할 수 있다. 서울시가 최대 2년까지 인큐베이팅을 지원한다. 스튜디오 8기인 그는 곧 ‘졸업’이다.

그래서일까. 디자이너라기보다는 패션스타트업을 구상하는 창업자 같은 느낌을 받았다. 팀장급까지 올라선 회사생활을 접고 나온 만큼 의욕이 넘쳐났다. 이미 개인 브랜드를 론칭했고, 조만간 법인사업체로 전환해 사업을 본격화한다니 그럴 법도 했다.

디자이너로서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옷뿐 아니라 주얼리까지 섭렵했다. 그런 점이 데브라 랭글리 전 캘빈클라인 아시아지사장에게 인정받았다. 출발은 남성복 디자이너였지만 여성복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폭넓은 경험과 진정성이 그를 4년제 명문 출신에 뒤지지 않는 실력과 탄탄한 균형감각을 갖춘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문 디자이너는 특히 ‘예술작품’과 ‘판매상품’의 간극을 좁히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심플리크(심플+유니크) 스타일에 맞춰 예술적 감성을 상업적 디자인으로 녹여내는 작업이 화두다. 전문대 졸업 후 10년의 업계 경력을 쌓은 내공이 배어난다. “20대로 돌아가도 해외 유학보다 하루빨리 현장에서 실무 익히는 쪽을 택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스튜디오 입주 요건이 까다롭다고 들었다.

“사업 1년 미만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입주한다. 일단 들어오면 조건은 좋다. 서울시에서 완전 무상으로 최대 2년까지 지원해준다. 6개월에 한 번씩 모집하는 기수제인데, 시가 운영하는 곳이라 심사가 까다로운 편이다. 포트폴리오 등 증빙 자료를 주로 본다. 나름의 경력을 검증받은 디자이너들만 들어올 수 있다.”

- 패션 분야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같은 거구나.

“그렇다. 입주기간 동안 지원받으며 잘 준비해 나가는 패션스타트업 개념이다. 스튜디오에 디자이너가 50명 정도 있다.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얘기도 나눈다. 친한 사람들끼리는 콜라보(collaboration)도 하고. 2년간 운영하면서 자리를 잡아간다. 도움이 많이 된다.”

- 인지도 있는 브랜드에서 일했는데, 개인 브랜드를 론칭한 이유는 뭔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직장생활 했다. 답답함이 쌓인 것 같다. 직장생활이란 게 틀에 짜인 시스템대로 하는 거니까. 갈급함을 느꼈다고 할까. 디자이너로서 나만의 브랜드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회사 다니면서 따로 디자인 준비하고 사비를 들여가며 촬영도 했다. 내 브랜드를 했을 때 콘셉트를 어떻게 잡을지 고민도 많이 했었다.”
문정욱 디자이너의 컬렉션. / 나인틴에이티 제공
문정욱 디자이너의 컬렉션. / 나인틴에이티 제공
- 회사에서 나오는 결심이 쉽진 않았을 텐데.

“사실 개인 브랜드를 론칭한 동기가 좀 독특했다. 싱가포르 브랜드 인버티드엣지 데브라 랭글리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캘빈클라인 아시아지사장을 지낸 분이다. 회사생활 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보냈는데 퇴사 후 연락이 닿았다. ‘그러지 말고 새 브랜드를 론칭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브랜드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바로 론칭한 게 지금 브랜드다.

난 남성복 회사에서만 쭉 일했는데 개인 포트폴리오엔 주얼리 작품 전시도 있었다. 남성복 콘셉트와 여성 주얼리가 이질적이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분이 ‘이 친구가 과연 도전의식이 있을까’ 하면서 조금 짓궂게 여성복 브랜드를 제안한 것 아닐까 싶다. (웃음) 결과적으로 자금 지원을 받으며 론칭하고 그쪽 해외 편집숍에도 입점하는 계기가 됐다.”

- 브랜드명 나인틴에이티는 무슨 뜻인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1980년생의 디자이너. 일차적 의미는 그거다. (웃음) 나이로 치면 만 35세, 딱 20대와 40대의 중간지점이다. 나인틴에이티가 타깃층으로 삼은 20~40대의 평균이란 의미가 있다. 경계를 넘나들며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뜻도 담았다.”

- 롯데백화점에도 입점했다고. 반응은 어떤가.

“롯데백화점 자체 편집숍인 유니크샵에 입점했다. 유니크샵은 잠실점과 부산본점 두 군데 있다. 두 곳에서 매출이 월 평균 2000만원 정도 나왔다. 지금은 잠실점만 남았지만. 1년 넘게 계속 하고 있으니 평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인틴에이티는 영캐주얼과 캐릭터캐주얼을 접목한 여성캐주얼이다. 주얼리를 가미해 심플하면서도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백화점 추가 입점이라든지.

“5월 이후 스튜디오에서 나가야 한다. 회사 규모가 있는 편이라 법인사업체로 전환한다. 투자자를 만나고 유통망을 확보하는 등 사전 작업을 하고 있다. 다른 신진 디자이너들에 비해 시즌 기획모델도 많이 준비됐다. 2015 F/W(가을/겨울) 시즌 준비를 마치면 본격 영업에 나설 계획이다. 국내외 입점 예정인 곳도 있다. 모두 나인틴에이티 브랜드로 상품 준비 중이다.”
작년 12월 '2014 전문대학 교육포럼'에서 '자랑스러운 전문대인' 상을 공동수상한 문정욱 디자이너(오른쪽 두번째). / 전문대교협 제공
작년 12월 '2014 전문대학 교육포럼'에서 '자랑스러운 전문대인' 상을 공동수상한 문정욱 디자이너(오른쪽 두번째). / 전문대교협 제공
- 화제를 바꿔보자. 전문대에 진학한 계기가 있다면.

“별다른 이유는 없다. 원래 꿈은 피아노 작곡가였다. 4년제 음대에 입학했는데, 가보니까 좀 안 맞더라. 패션 쪽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재수해 전문대 디자인 관련 학과로 간 거다. 음악이나 패션이나 특별히 4년제냐 전문대냐를 따진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교수진과 커리큘럼을 주로 봤다.

학교 교수님들에게 관심이 갔고 살던 곳과도 가까워 택했다. 당시만 해도 섬유미술이나 섬유공예를 전공할 수 있는 디자인과가 많지 않았고, 남학생을 받는 곳도 드물었다. 안양과학대도 내가 입학할 때 남학생을 처음 뽑았다. (웃음) 그렇게 들어간 학교라 즐겁게 배웠고, 교수님들에게 많은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 작년 ‘자랑스러운 전문대학인 상’을 받았다. 어떤 점이 어필했나.

“아무래도 작년 하반기 DDP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유망 디자이너를 선정하는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에 참가했다. 심사 기준이 까다롭고 합격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다. 남성복 출신이 여성복을 디자인하는 이색 경력도 있고, 주얼리도 다루고 매출도 괜찮고. ‘멀티’가 되니까 좋은 평가를 받은 듯하다. (웃음)

10년 정도 포트폴리오가 차곡차곡 쌓였다. 수상 경력도 있고 연이어 국내외 전시도 많이 했다. 제일 중요한 건 신진 디자이너 포트폴리오가 해외에서 먼저 통해 투자를 받았다는 점 아닌가 싶다. 보통 자기 자본금 들여 개인 브랜드 론칭한 뒤 협의해서 입점하는 시스템인데, 난 예외 케이스였으니까.”

- 전문대 출신이란 게 걸림돌이 된 적은 없었는지.

“의외로 취업할 땐 거의 없었다. 물론 디자인 쪽도 제일모직 같은 대기업 입사는 학벌이 받쳐줘야 한다. 그것보다 큰 건 파벌이다. 몇몇 4년제 미대나 예술대 출신이 이쪽을 잡고 있다. 동문끼리 끌어주는 문화는 무시 못한다. 전문대라 해서 불리한 건 아니었지만, 집단에 속해 있으면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분위기는 있다. 다만 난 별로 신경 안 쓰고 살았다. (웃음)”
문정욱 디자이너의 컬렉션. / 나인틴에이티 제공
문정욱 디자이너의 컬렉션. / 나인틴에이티 제공
- 대학 시절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

“봉지희 교수님(봉준호 감독 누나)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주얼리 작업을 교수님에게 개인적으로 사사받았다. 졸업 후에도 매년 학교에 가서 더 가르쳐달라면서 교수님 쫓아다녔고. 그런 분이 없다. 저한텐 은인 같은 분이다. 학교도 그렇고. 이번에 산업체 경력을 인정받아 모교 겸임교수로 임용됐다. 디자인 실무가 무엇이고 어떤 룰(rule)에 따라 이뤄지는지 가르칠 생각이다. 후배들이 처음 회사 들어가도 너무 학생 티 내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 디자이너 문정욱이 중요시하는 부분은.

“예술적 감성을 상업성 안에서 녹여내면서 간극을 좁히는 것. 때로 현실적인 판매 전략상품과 메시지를 전하는 비주얼 전략상품으로 이원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패션디자인엔 현실성이 중요하다. 디자이너가 자기 감성과 현실 수요를 어떻게 타협할지 생각해야 한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못하는 부분이다. 자기 안에 갇히고 스스로의 감성이 너무 중요해서 타협을 못한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직장생활 하면서 사람들 많이 만나본 게 그런 점에선 도움이 되겠다.

“패션도 디자인이고 산업이다. 예술적 부분만 가져갈 순 없다. 실용적, 상업적 면도 봐야 한다. 이걸 알고 디자인하느냐, 모르고 하느냐의 차이가 크다. 내 경우엔 전문대 졸업하고 일찍 사회생활 하면서 몸으로 부딪친 게 도움이 됐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전문대 진학을 택할 것이다. 일찍부터 실무 경력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 패션이나 삶에서 나만의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남의 말에 너무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패션 쪽엔 멋도 모르면서 말만 앞서거나 허세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남 잘되는 꼴 못보고 시기하거나 질투하기도 하고. 경험 없이 뜬구름 잡으며 공치사하는 사람들 얘기에 들뜨지 않으려고 스스로 다잡는 편이다. 경험해보니 자기 고집만 중요한 건 아니다. 때로는 타협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진정성 있게 열심히 살자는 게 모토다.”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14)'나인틴에이티' 문정욱 디자이너
◆ 나에게 전문대란…

남다르다. 가족 같은 곳, 혹은 가족의 일부. 학교 때부터 교수님이랑 부모님이 서로 안다. 교수님께서 어머니를 좋게 봐주셨다. 패션쇼 열 때도 옆자리를 어머니에게 내줄 정도였으니. 부모님이 날 봤을 때, 그리고 교수님이 봤을 때 ‘공통분모’가 형성됐다. “내 자식이 성실해요” “내 학생이 성실합니다” 이렇게. 참 가족 같은 분위기다. 학교와 교수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를 상상하기 어렵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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