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무슨 개혁을 한다는 건가
이완구 총리 체제가 출범한 지 보름이 넘었다. 마지막 골든 타임이라는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를 이끌어갈 내각이다. 그러나 별 긴장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연말정산·건강보험료 개편 중단 소동에 이어 총리 인준과정까지 진통을 겪었다지만, 그런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완구 내각이 4대 개혁에 대한 국정 철학을 공유하고 있는지부터가 실은 의문이다.

공공·노동·금융·교육 시스템을 바꾸자는 4대 개혁이다. 대통령이 향후 30년이 달렸다고 강조하는 개혁이건만, 지금껏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청사진을 만드는 중이다. 그것도 3~4월까지 내놓겠다는 과제들조차 여태 빈칸이다. 그동안 추진해왔던 정책과제를 개혁과제로 이름만 바꿔 리스트를 채우는 사례까지 나오는 정도다.

철학도 없고, 방향도 없다

진도표라도 있다는 게 노동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다. 노사정위가 이달 말까지 비정규직 등 이중구조, 통상임금·근로시간 단축·정년 연장 등 현안에 대해 합의안을 도출하겠다고 했지만, 벌써 아주 낮은 단계의 합의만 나와도 다행이란 김빠진 소리만 들린다. 여기에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근무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것을 개혁안으로 제시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과보호가 해소돼야 풀린다는 기본 원칙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의 개혁이라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뭔가 서로 겉돈다는 느낌만 준다.

금융은 더하다. 지금 하고 있는 기술금융과 핀테크를 개혁과제로 또 써먹는 것도 보기 딱하지만, 규제 완화를 한다면서 주주권을 침해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5억원 이상 임원보수 공개 가이드라인, 국민연금 배당 개입 등 새로운 규제를 속속 만들어내며 역주행한다. 개혁의 대상인 관치를 오히려 더 강화하는 것을 개혁으로 부른다. 주객의 전도다. 상반기까지 만든다는 2단계 금융개혁방안은 아직 아젠다도 없다.

공공개혁도 다를 게 없다. 부채 감축, 방만경영 개선 같은 역대 정부의 식상한 메뉴를 초과달성했다며 자화자찬이다. 600여개의 유사·중복 재정사업을 내년까지 앞당겨 통폐합한다는 목표는 말만 있을 뿐, 어떻게 한다는 밑그림이 없다. 시장형 공기업의 민영화는커녕 유사 기능 구조조정을 어떻게 할지 언급도 없다. 국회로 넘어간 공무원연금 개혁은 감감 무소식이다. 교육은 아예 언급할 것도 없다.

불어터진 국수가 쉰 국수 될 판

개혁의 방향이 없다. 개혁에 대한 철학이 없어서다. 게다가 컨트롤 타워도 없다. 해당 부처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니 부처들이 제멋대로 제 팔만 휘두른다. 보다 못한 청와대가 최근 24개 핵심 개혁과제를 선정하면서 4대 개혁별로 14개 과제를 정리했지만, 목록을 간추린 것에 불과하다. 개혁과제인지 정책과제인지 분간도 안 된다. 여기에 새누리당은 정부를 제치고 정책을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국정 지지도가 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경제민주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렇지만 기득권을 깨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다. 반발이 없을 리 없다. 인기도를 거론할수록 개혁은 푸드트럭 꼴이 나고 포퓰리즘은 기승을 부릴 것이다.

개혁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 지경이다. 국수가 불어터지다 못해 쉰 국수가 될 판이다. 다른 쪽에선 4월 총파업 소리가 나온다. 이렇게 골든 타임이 흘러간다. 정녕 시위대의 환호성이 커질 일만 남은 것인가.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