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배당 확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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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적정 배당’ 수준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는 기업이 배당을 늘려야 증시가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며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재계는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6일 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선 기업 배당을 둘러싼 이견이 갈등으로 번졌다. 기금운용위원회가 배당이 적은 기업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 등을 의결하려 했지만 기업 반대에 부딪혀 파행으로 끝났다. 재계 측 위원들은 무리한 경영 간섭이라며 퇴장했다. 배당 확대에 찬성하는 쪽은 고배당이 저성장·저금리 환경에서 투자자를 증시로 불러올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시중은행의 1년짜리 예금 금리가 연 2%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배당이 이자수익의 대체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내 기업들의 배당 성향이 낮은 것은 그만큼 배당 여력이 적기 때문이라고 맞서고 있다. 경기에 민감하거나 내부 재원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많은 만큼 배당보다 투자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찬성 / “1년 예금해도 연 2% 저금리 시대…배당이 이자수익 대체재 역할해야”
사내유보금 많아지면 사적 이익 유혹 커져
국내 자본시장에서 배당 확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새로운 트렌드로 해석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구조에서 관찰되는 중요한 특징은 저성장과 저금리다. 우선 저성장 환경을 짚어보자. 자본이 많이 축적되고 경제 발전의 성숙도가 높아지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성장률은 3%대 중반에 그치고 있다. 이런 저성장 기조는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저성장 시대에는 기업 실적이 매우 느린 속도로 늘어난다. 새로운 투자 기회를 포착하는 것도 예전보다 훨씬 어렵다. 주가 상승이 매우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기업이 좋은 투자 기회를 갖고 있다면, 벌어들인 이익금을 재투자해 추가 도약을 도모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이익 잉여금을 쌓아놓기만 하는 상황이라면 이익금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주주 입장에서 배당을 늘리라는 요구를 많이 하게 되는 배경이다.
저성장은 저금리를 수반하는 경향이 강하다. 저금리는 역으로 배당에 대한 매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시중금리 수준이 높을 때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배당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금리가 낮게 형성될 때 배당이 이자 수익에 대한 대체재로 떠오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시장금리 지표로 많이 활용되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000년만 해도 연 8.3%였다. 이달 기준 국고채 금리는 연 2.1% 수준이다. 15년 동안 금리가 6.2%포인트나 하락한 것이다.
금리가 연 8.3%일 때 배당이 이자 수익에 대한 대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돈을 은행에만 넣어놔도 고수익을 얻을 수 있어서다.
금리가 연 2% 선에 머무는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다르다. 배당은 이자 수익의 대체재 역할을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국내 기업들이 선진국 수준의 배당을 하지 않고선 이를 현실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가증권시장의 배당수익률과 배당성향은 선진국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가 이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저금리 상황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배당 확대에 대한 수요 증가가 구조적인 기조라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다.
물론 고배당에 대한 요구가 기업의 투자 기회를 희생시킬 정도로 과도해선 안 된다. 기업이 처한 재무 및 영업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다만 한국 경제의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낮은 배당률 관행에 대한 논리적 명분은 빠른 속도로 퇴색하고 있다. 더구나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취약한 국내에선 경영자가 사내에 유보된 이익금을 이용해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투자하거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개연성도 적지 않다.
기업들은 시대적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배당 확대에 대한 주주들의 요구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 펼치려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주는 게 중요해졌다. 고배당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선 기관투자가들 역시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게 좋겠다.
반대 / “정부가 압박하는 인위적 고배당…수익성 나빠진 기업들 이중부담”
미 구글·아마존 무배당…경기부양 효과도 작아
기업의 재무적 의사결정 가운데 배당은 늘 주목의 대상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집중적으로 언론과 시장의 관심을 받은 적은 없었다. 기업배당이 한국 경제에 가져올 효과에 대한 장밋빛 기대 때문인 듯하다. 이 같은 분위기가 자칫 배당만능주의로 흘러갈 수 있어 우려스럽다.
배당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부채 상환과 이자비용을 지출하고도 현금흐름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투자 기회를 봐가며 사내 유보를 할지 주주에게 돌려줄지를 고려해야 한다. 미래 투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올리기 어렵다고 판단돼야 배당 또는 자사주 매입의 형태로 주주에게 나눠주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배당성향은 약 20%다.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 차이는 나라별 시장이나 제도 등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 정부는 배당소득과 자본소득에 대해 차별적 조세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배당소득에는 15.4%의 배당소득세를 매긴다.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최고 38%까지 과세하지만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배당 대신 주식거래에 따른 단기 차익을 선호하게 된다.
산업별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 경기에 민감하거나 내부재원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일이 잦은 정보기술(IT), 경기소비재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나라는 배당보다는 투자를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보다 배당에 후한 나라지만 구글과 아마존 같은 기업은 무배당을 당연시한다.
만약 기업이 충분한 수익을 냈는데 투자기회가 마땅치 않다면 주주에 환원하는 게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배당 여력이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글로벌 시장이 구조적 장기 불황을 겪고 있어 소수 상위 기업의 수출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고 내수 역시 부진하다.
배당을 인위적으로 확대할 경우의 부작용도 감안해야 한다. 특정 시점에 무리하게 늘린 배당은 지속가능성이 낮다. 배당을 늘렸다가 갑자기 배당을 안 하는 건 원래 무배당 정책으로 일관하던 것보다 더욱 부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일각에선 배당 확대가 국민 소득을 증대시켜 경제를 활성화한다며 기업이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가계 소득 연계에 대한 실효성과 수혜를 받는 대상이 누구인지 의문이다. 우리 상장사에 대한 외국인 주주 비율은 32.4%다. 배당을 실시한 많은 기업의 외국인 비율이 과반수이다. 외국인 주주가 지난해 본국으로 송금한 배당금이 11조3600억원에 달했다. 또 개인투자자가 23% 정도라고는 하지만 대주주를 빼면 나머지는 10% 남짓하다.
현재의 배당 논의가 정부 주도란 점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발적으로 배당 증가를 유도하는 게 아니라 징벌적 과세 성격의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동원하는 게 문제다. 수익성 악화로 투자가 어려운 환경에서 기업 부담이 늘 수 있다. 작년 12월 국민연금의 배당주주권을 보장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통과됐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연기금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 배당의 적정 수준을 판단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관치일 수 있다.
배당과 관련한 정부 정책은 기업 가치를 증가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방향으로 수립해야 한다. 누구도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데 기업에 인위적인 부담을 지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조재길/송형석 기자 road@hankyung.com
찬성 / “1년 예금해도 연 2% 저금리 시대…배당이 이자수익 대체재 역할해야”
사내유보금 많아지면 사적 이익 유혹 커져
국내 자본시장에서 배당 확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새로운 트렌드로 해석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구조에서 관찰되는 중요한 특징은 저성장과 저금리다. 우선 저성장 환경을 짚어보자. 자본이 많이 축적되고 경제 발전의 성숙도가 높아지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성장률은 3%대 중반에 그치고 있다. 이런 저성장 기조는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저성장 시대에는 기업 실적이 매우 느린 속도로 늘어난다. 새로운 투자 기회를 포착하는 것도 예전보다 훨씬 어렵다. 주가 상승이 매우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기업이 좋은 투자 기회를 갖고 있다면, 벌어들인 이익금을 재투자해 추가 도약을 도모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이익 잉여금을 쌓아놓기만 하는 상황이라면 이익금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주주 입장에서 배당을 늘리라는 요구를 많이 하게 되는 배경이다.
저성장은 저금리를 수반하는 경향이 강하다. 저금리는 역으로 배당에 대한 매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시중금리 수준이 높을 때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배당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금리가 낮게 형성될 때 배당이 이자 수익에 대한 대체재로 떠오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시장금리 지표로 많이 활용되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000년만 해도 연 8.3%였다. 이달 기준 국고채 금리는 연 2.1% 수준이다. 15년 동안 금리가 6.2%포인트나 하락한 것이다.
금리가 연 8.3%일 때 배당이 이자 수익에 대한 대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돈을 은행에만 넣어놔도 고수익을 얻을 수 있어서다.
금리가 연 2% 선에 머무는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다르다. 배당은 이자 수익의 대체재 역할을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국내 기업들이 선진국 수준의 배당을 하지 않고선 이를 현실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가증권시장의 배당수익률과 배당성향은 선진국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가 이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저금리 상황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배당 확대에 대한 수요 증가가 구조적인 기조라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다.
물론 고배당에 대한 요구가 기업의 투자 기회를 희생시킬 정도로 과도해선 안 된다. 기업이 처한 재무 및 영업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다만 한국 경제의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낮은 배당률 관행에 대한 논리적 명분은 빠른 속도로 퇴색하고 있다. 더구나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취약한 국내에선 경영자가 사내에 유보된 이익금을 이용해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투자하거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개연성도 적지 않다.
기업들은 시대적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배당 확대에 대한 주주들의 요구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 펼치려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주는 게 중요해졌다. 고배당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선 기관투자가들 역시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게 좋겠다.
반대 / “정부가 압박하는 인위적 고배당…수익성 나빠진 기업들 이중부담”
미 구글·아마존 무배당…경기부양 효과도 작아
기업의 재무적 의사결정 가운데 배당은 늘 주목의 대상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집중적으로 언론과 시장의 관심을 받은 적은 없었다. 기업배당이 한국 경제에 가져올 효과에 대한 장밋빛 기대 때문인 듯하다. 이 같은 분위기가 자칫 배당만능주의로 흘러갈 수 있어 우려스럽다.
배당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부채 상환과 이자비용을 지출하고도 현금흐름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투자 기회를 봐가며 사내 유보를 할지 주주에게 돌려줄지를 고려해야 한다. 미래 투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올리기 어렵다고 판단돼야 배당 또는 자사주 매입의 형태로 주주에게 나눠주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배당성향은 약 20%다.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 차이는 나라별 시장이나 제도 등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 정부는 배당소득과 자본소득에 대해 차별적 조세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배당소득에는 15.4%의 배당소득세를 매긴다.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최고 38%까지 과세하지만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배당 대신 주식거래에 따른 단기 차익을 선호하게 된다.
산업별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 경기에 민감하거나 내부재원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일이 잦은 정보기술(IT), 경기소비재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나라는 배당보다는 투자를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보다 배당에 후한 나라지만 구글과 아마존 같은 기업은 무배당을 당연시한다.
만약 기업이 충분한 수익을 냈는데 투자기회가 마땅치 않다면 주주에 환원하는 게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배당 여력이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글로벌 시장이 구조적 장기 불황을 겪고 있어 소수 상위 기업의 수출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고 내수 역시 부진하다.
배당을 인위적으로 확대할 경우의 부작용도 감안해야 한다. 특정 시점에 무리하게 늘린 배당은 지속가능성이 낮다. 배당을 늘렸다가 갑자기 배당을 안 하는 건 원래 무배당 정책으로 일관하던 것보다 더욱 부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일각에선 배당 확대가 국민 소득을 증대시켜 경제를 활성화한다며 기업이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가계 소득 연계에 대한 실효성과 수혜를 받는 대상이 누구인지 의문이다. 우리 상장사에 대한 외국인 주주 비율은 32.4%다. 배당을 실시한 많은 기업의 외국인 비율이 과반수이다. 외국인 주주가 지난해 본국으로 송금한 배당금이 11조3600억원에 달했다. 또 개인투자자가 23% 정도라고는 하지만 대주주를 빼면 나머지는 10% 남짓하다.
현재의 배당 논의가 정부 주도란 점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발적으로 배당 증가를 유도하는 게 아니라 징벌적 과세 성격의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동원하는 게 문제다. 수익성 악화로 투자가 어려운 환경에서 기업 부담이 늘 수 있다. 작년 12월 국민연금의 배당주주권을 보장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통과됐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연기금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 배당의 적정 수준을 판단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관치일 수 있다.
배당과 관련한 정부 정책은 기업 가치를 증가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방향으로 수립해야 한다. 누구도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데 기업에 인위적인 부담을 지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조재길/송형석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