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에서 사업가로 변신
20년 된 기술 상업화 성공
한번에 여러 질병 동시 진단
사업에 대한 열망으로 차 있던 한 교수에게 삼촌의 이 한마디는 큰 힘이 됐다.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고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돈이 문제였다. 외부에서 투자금을 모아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삼촌은 모아둔 돈을 조카에게 투자했다. 15년 뒤 이 회사는 유전자로 질병 원인을 진단하는 분자진단 시약 전문회사로 성장했다. 천종윤 씨젠 대표(사진)의 얘기다.
○국내 최초 FDA 허가받아
씨젠은 분자진단 시약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회사다. 대상포진 원인균인 헤르페스바이러스(HSV) 진단 시약이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분자진단 제품으로 FDA 허가를 받은 회사는 씨젠이 처음이다.
천 대표는 이화여대 생물학과 교수로 있던 2000년 씨젠을 차렸다. 삼촌인 천경준 전 삼성전자 부사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천 대표는 씨젠을 차린 지 2년 만에 교수직을 그만뒀다. 회사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애니콜 사업을 담당했던 삼촌은 바이오 사업에 대한 식견이 있었다”며 “덕분에 기반이 잡힐 때까지 돈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천 전 부사장은 현재 천 대표에 이어 씨젠의 2대 주주다.
○“길목을 지키는 기술 개발”
천 대표가 사업에 뛰어들 때만 해도 질병에 대한 분자진단은 활발하지 않았다. 기존 진단 방식보다 정확도가 높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과정도 까다로워 숙련된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천 대표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술이 개발된 지 20여년이 흘렀는데도 사업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PCR은 아주 적은 양의 유전자를 수조 배로 증폭하는 기술로 분자진단의 핵심이다. 천 대표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 분야만큼은 자신이 있었다”며 “분자진단 시장에서 모두에게 필요한 ‘길목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천 대표는 이런 이유로 장비가 아닌 시약 개발에 집중했다. 분자진단 분야에서 핵심물질인 ‘올리고누클레오타이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한 번의 진단으로 질병의 여러 원인균을 동시에 진단(다중검사)하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호흡기 바이러스 16종, 성매개 감염 원인균 7종, 인유두종 바이러스 28종 등을 검사할 수 있는 제품을 시장에 내놨다. 2008년 미국의 검사센터에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분자진단 표준화 가능”
씨젠은 올해 세계 최대 분자진단 시장인 미국에 법인을 세운다. 진단장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증상에 따라 질병과 원인균을 동시에 진단하는 차세대 기술인 ‘MuDT’를 적용한 신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부터 국내에서 성감염 질환 등 6개 분자진단 다중검사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것도 씨젠에는 호재다. 씨젠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급성설사, 수막염, 폐렴 등 3개 질병의 분자진단 다중검사 제품을 상용화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