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위험을 겪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마련이므로 개인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사고 예방과 조난 구조의 대책은 필수적 사안이다. 그동안 겪어온 재난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예방과 사후 대책을 제도화한 것이 방재 시스템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방재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자주 여객선 침몰이나 고층 주택 화재로 수많은 생명을 잃는다. 체육관이 무너지고 산사태로 민박집이 매몰돼 젊은이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대형 참사는 우리 사회의 연례행사였다. 이제 국가방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했으니 앞으로는 이런 대형 참사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불안함이 가신 것은 아니다.

배가 침몰하고 아파트에 불이 날 때 구조소방 시스템이 좀 더 잘 작동했다면 수많은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세월호가 평형수를 빼면서까지 화물을 과적하지 않았다면 침몰 사고 자체가 없었을 것이고, 아파트 주민들의 주차가 소방차 진입을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도 불길은 좀 더 일찍 잡혔을 것이다. 자신의 안전과 위험까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겨진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물론 과적한다고 배가 반드시 침몰하고 소방차 진입로에 잠시 주차했을 때 항상 화재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설마 사고가 날까’ 하는 마음으로 위험한 일을 자행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의 핵심은 바로 ‘설마 사고가 날까’라는 생각이다. 한 사람의 무책임한 일탈 행동이 큰 재앙을 불러오는 것이다.

결국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는 대책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개인의 모험을 통제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한국에서는 위험한 행동은 아예 금지한다. 물살 센 강이나 바다에는 으레 ‘수영금지’ 안내판이 붙어 있는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물살이 거세다는 설명과 더불어 수영하려면 이 사실을 알고하라고 안내한다. ‘수영금지(No swimming)’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하에 수영하시오(Swim at your own risk)’다. 개인의 모험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금지할 까닭이 없고 혹시 사고로 이어지면 그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 책임이라는 것이다.

사실 마지막 순간에 내 안전을 도모할 사람은 나 자신이다. 배가 크게 기울었는데도 선실 방송은 그대로 안전한 선실에 기다리라는 말을 반복했고 배가 기운 사실을 긴급전화로 파악한 해경의 안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나라에 걸맞은 안전교육은 마지막 순간에는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금지 일변도의 안전대책이 개인의 자율감각을 마비시켰고 사고가 날 때마다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나라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핀테크(금융+기술)’도 마찬가지다. 금융거래에는 항상 사기의 위험이 공존하고 익명성에 가린 전자거래에서는 그에 합당한 인증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책임은 사기당하는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나서는 투자자에게는 사기의 위험성을 고지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만약 정부가 모든 투자행위를 사기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겠다고 나서면 사기 피해의 책임까지 짊어져야 한다. 얼마 전 저축은행 사태가 좋은 예다. 정부가 원하는 것이 완벽하게 안전한 핀테크라면 새 시대의 금융산업은 출발조차 어렵다.

모든 생명 개체는 위기에 당면하면 본능적으로 자기방어 기제를 발동한다. 사실 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마지막 순간에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의 안전대책이 개인의 자기방어 영역에까지 오지랖을 넓힌다면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순발력을 크게 훼손한다. 오히려 정부 대책과 개인의 자기방어가 적절히 배합될 때 사고의 피해는 줄어든다. 정부의 안전대책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만 단속하고, 피해가 행위자에게만 귀속되는 모험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을 고지하는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