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동시장 개혁, 어렵지만 가야 할 길
지난달 신년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말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은 단호해 보였다. 노동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전략이라고 힘주어 말할 때는 비장감마저 들었다. 출입기자는 합의안 도출이 어려울 텐데 대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 대통령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타협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를 수긍하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노동시장 개혁이 한국 경제의 필수적인 생존전략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 경제의 성공을 이끈 것은 우수한 노동력인데, 언제부터인가 이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힘들여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자격증을 따도 취업이 쉽지 않다. 실제 경제데이터를 보면 노동이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노동시장과 서비스 산업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노동시장 개혁이 시급한 게 현실이지만 그것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 개혁이 정답이더라도 노사가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실현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노·사·정 합의기구가 적절한지 의문이다. 집단의 대리인들은 흔히 집단의 평균적인 수준을 대변하게 된다. 그러면 ‘평균의 오류’에 빠진다. 즉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절반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합의의 결과는 집단 내에 내부적인 갈등을 초래한다. 그렇다고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의 이익을 만족시키는 타협안은 불가능하다.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시장 개혁의 당위성 확산에는 도움이 될 것이지만 타협안이 나오더라도 소속 집단의 영향력 있는 그룹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바람직한 대안은 노사 간의 자율적인 협상인데 이것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창업자가 경영을 하고 있다면 사정은 조금 낫다. 창업 때부터 고생을 같이 한 근로자에 대해 동료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을 물려받은 경영자나 새로 영입한 전문경영인이 사용자를 대표하고 관료화된 노조가 근로자를 대표하면 협상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기 힘들다. 노사 간의 신뢰가 부족해 한국의 노사협력 관계는 세계적으로 꼴찌그룹에 속한다. 그리고 지식인이나 정치인 등 훈수꾼들은 노사 간의 타협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이름값을 올리기 위해 명분에만 집착할 뿐이고 정치인은 여론에 잘 보여 다음 선거에 도움을 받을 생각뿐이다.

사실 노동시장 개혁은 당위성만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역사적 과정을 거쳐야 이루어진다.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한 국가들은 대부분 경제의 밑바닥을 경험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풀어진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경제가 바닥을 거치지 않고 개혁에 성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나의 가족은 바닥까지 가지 않으리라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은 좀 더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동안에라도 낮은 임금, 열악한 작업환경이라도 이를 희망하는 사람에게서 빼앗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규직이 싫어서 비정규직을 택한 것이 아니다. 안락한 사무실이 싫어서 열악한 작업환경을 택한 것이 아니다. 나를 받아주는 곳이 그곳이기에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은 직장으로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소중한 일자리인 것이다. 나를 위한다고 법을 바꿔 월급을 강제로 올리면 나는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급여를 주더라도 내가 갈 수 없는 직장은 그림속의 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기화 < 전남대 교수·경제학 ckh8349@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