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 대신 수혈…금융사, 외부인재 영입 늘린다
은행 등 금융회사 분위기는 외부 인사에 배타적이다. 아직도 ‘순혈주의’가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KB금융지주가 지난 13일 최영휘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최대 경쟁사의 최고경영자(CEO)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금융사들의 순혈주의가 서서히 깨지고 있다.

경쟁사 출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외부 출신을 영입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외부 인재를 영입해서라도 약점을 보완하거나 미래 먹거리를 키워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의지가 투영되고 있어서다.

◆“외부 전문가 영입해 약점 보완”

대형 금융그룹들은 대부분 은행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최근엔 은행업이 불황에 빠지자 비은행 부문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그룹 내 비은행 부문 전문가가 부족했다. 짧은 기간에 전문가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외부 수혈이다.

DGB금융은 우리아비바생명을 인수해 지난달 DGB생명을 출범시키면서 오익환 전 한화생명 리스크관리 담당 전무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미국 보험계리사(FSA), 공인재무분석사(CFA) 등의 자격을 가진 보험 전문가다.

지난달 KB생명 사장으로 선임된 신용길 전 교보생명 사장도 비슷한 경우다. KB금융 측은 “그룹 내 생명보험 부문 전문가가 많지 않다”며 “외부 출신이지만 보험업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인사를 영입해 전문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일으켰던 국민은행과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정보기술(IT) 전문가를 영입했다. 국민은행은 김기헌 전 삼성SDS금융사업부 전문위원을, SC은행은 김홍선 전 안랩 사장을 각각 지난해 12월과 7월 부행장으로 영입했다. 농협카드는 지난해 초 정보 유출 사태 이후 사업 정상화를 위해 신응환 전 삼성카드 부사장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미래 먹거리 선점위해 필수”

강화해야 할 사업을 위해 해당 분야 전문가를 영입한 사례도 적지 않다.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말 ‘자산운용 명가’를 새 비전으로 제시하고, 김희석 전 한화생명 투자전략본부장을 농협금융 최고투자책임자(CIO)로 모셔왔다. 그는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에서 해외투자실장, 대체투자실장 등을 거친 자산운용 전문가다. 농협금융이 지난 13일 NH-CA자산운용 사장으로 한동주 전 흥국자산운용 사장을 선임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신한은행은 은퇴 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해 1월 미래설계센터를 열고, 김진영 전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 소장을 센터장으로 영입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4월 은퇴 브랜드인 ‘신한미래설계’를 선포하고 관련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외부 수혈에 대해 금융권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내부 출신이 갈 자리는 줄어들긴 하지만 ‘순혈주의’를 고집하다가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외부 출신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관측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보수적인 금융사에서 외부 출신들이 적응해 동화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조직과의 융합이 성공을 가름할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부 출신들이 지금은 IT 자산운용 등 한정된 분야에서만 영입되고 있지만, 이들이 성공할 경우 영입 분야도 다양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