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기업 '수호천사' 구회근 부장판사 "법정관리 기업 공통점은…"
‘대우자동차판매, 대한해운, 팬오션, 동양시멘트.’

지난 3년간 구회근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부장판사(47·사진)가 맡아 ‘회생’을 도운 대기업들이다. 매각이 예상되는 동양시멘트를 포함하면 그가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영정상화에 성공시킨 기업들의 몸값은 총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우자판은 사업부가 영안모자 등에 분리 매각됐고, 국내 4위 해운사인 대한해운도 삼라마이더스(SM)그룹이라는 새 주인을 만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벗어났다. 구 부장판사는 약 3년의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임기를 마치고 지난 11일 순천지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순천지원장 부임을 앞둔 최근까지도 산적한 과제를 몇 개 더 해결했다.

그가 맡아온 국내 벌크선사 1위 팬오션(옛 STX팬오션)은 1조원이 넘는 금액에 국내 민간 사료생산 1위 업체인 하림그룹에 매각하는 계약을 지난 12일 체결했다. 그동안 주인(STX그룹)을 잘못만나 망가졌던 회사를 글로벌 곡물사업에 진출하려는 우량기업에 팔아 되살린 것이다. 2013~2014년 국내 산업계와 금융가를 뒤흔든 ‘동양사태(동양그룹의 갑작스런 법정관리로 4만여명의 회사채·기업어음 투자자가 피해를 본 사건)’도 최근 마무리지었다.

이재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와 함께 채권자들의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동양매직, 동양파워 매각 성공을 통해 채권 회수를 극대화했다. 국내 2위 시멘트회사인 동양시멘트는 이달 중으로 법정관리 조기졸업을 신청하고 상반기 ㈜동양과 함께 M&A 매물로 나올 예정이다.

웅진, STX, 동양그룹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체된 대기업들의 공통점에 대해 그는 △업종 불황에 따른 매출 부진 △잘못된 경영 타이밍 △장래가 불확실한 업종의 신규사업 확장 등을 꼽았다. 그는 “매출이 부진해서 (법정관리에) 들어온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회생 신청을 너무 늦게 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웅진, STX그룹의 경우 장래가 불확실한 신규사업을 무리하게 확대한 것이 화근이었다”며 “무조건 회사 덩치를 키우려는 오너들의 욕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파산부는 기업의 생사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은 만큼 어느 부서보다 전문성이 강조되는 재판부로 꼽힌다.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기업M&A, 회계, 소송, 경영, 재무 등 다방면에 걸친 전문지식과 경험이 필수다. 구 부장판사는 이런 전문성에 빠른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을 갖춰 업계에 신망이 두터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윤준 수석부장판사)가 시대흐름에 맞춰 발빠르게 혁신하고 법정관리제도를 선진화시키는 데도 ‘숨은 공로'가 컸다는 평가다. 과거 파산부 부장판사를 역임한 정준영 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장과 구회근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패스스트랙 회생절차를 도입해 회생에 소요되는 기간을 대폭 줄였다. 또 채권은행들이 추천하는 구조조정담당임원(CRO) 제도 도입을 통해 기존경영인유지제도(DIP)의 약점을 보완했다. 작년에는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옛 사주의 부도덕한 회생절차 악용 문제를 개선하기도 했다. 구 판사는 최근까지 윤준 수석부장판사와 함께 ‘도산전문 법원 설립’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도 앞장섰다.

그는 소회를 묻는 질문에 “3년간 열심히 달려왔고 많은 기업들을 살릴 수 있어서 뿌듯했다”며 평소 좋아하는 구상 시인의 ‘꽃자리’ 시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소개했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너가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 부장판사는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업연수원 22기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수원지법 판사, 대전고등법원 판사, 광주지법 장흥지원장 등을 거쳐 2012년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부장판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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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