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과정은 지켜보기에도 불편하다. 총리직을 맡게 돼도 걱정, 낙마해도 걱정이라는 우려들이 새누리당 내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겹겹으로 뒤틀린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또다시 확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조인 출신인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다는 논란으로 낙마한 것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짜깁기식 친일발언 공세에 휩쓸려버린 문창극 후보자 때와도 완전히 딴판이다.

한마디로 총리감이 없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정치인을 만들어 내고 지도자를 키워가는 일련의 과정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다지도 인물이 사라진 것은 정치인 충원 시스템에서부터 근본적인 고장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경로를 통해 녹취록까지 공개되고 말았지만 이 후보자의 언론관은 사석 발언이라는 점을 백분 감안하더라도 상식을 의심케 할 만한 것이었다.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를 지낸 3선 의원의 말일 수가 없는 발언이었다. 본인 해명대로 흥분한 상태에서의 사적 담화라고 하더라도 초년생 기자들을 앞에 둔 60대 중반 정치인의 발언일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현역미필이란 병역 기록도 간단치 않은 논란거리다. 행시를 통해 경찰 간부를 지냈고, 도지사까지 거친 뒤, 국회의 지도부를 장악한 정치 엘리트의 치부를 보는 국민의 심사가 어떨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선출된 권력이라는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보여준다. 그것은 선출제도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정당정치의 한계일 수도 있으며, 더구나 선거민의 미성숙 때문일 수도 있고, 대중 민주주의에 내재한 본질적 허점일 수도 있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이완구 후보만 해도 국회의원 중에 그나마 양호한 인물일 수 있다. 지난번 문창극 후보의 경우 그를 청문한다는 청문위원장은 전과 2범이었다는 정도다. 누가 누구를 청문하고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권력에 오르게 되는지 모두가 뒤죽박죽이다.

현장 기자가 몰래 녹음한 것이 야당에 전해지고 공영방송으로 까발려지는 과정은 더욱 부끄럽다. 삼류 정치꾼들의 심부름꾼을 자처한 언론 종사자의 개인적 자질 결함이 아니라면 이는 제도로서의 언론기관에 조종을 울리는 중대한 사건이다. 기자들조차도 당파적이며, ‘우리가 남이가’식의 싸구려 집단의식에 찌들었거나 뒷소문이나 캐고 다니는 황색 저널리즘을 자백하는 증거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뭔가 잘못됐다. 이는 단순히 지금껏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부끄러운 현실만 확인한 채 슬쩍 넘어갈 상황이 아니다. 청문회는 시기상조라는 자괴감이 들지만 그렇다고 시계를 되돌릴 수도 없다. 박정희를 히틀러에 빗대는 치기 어린 대학생의 언어가 제1 야당 최고위원의 언어로 둔갑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념을 따질 계제도 아니다.

저격수가 날뛰고 사생활이 폭로되며 끼리끼리 연합하고 은밀히 내통하는 식의 저질 언론과 정치라면 나라의 희망을 찾기 어렵다. 이런 수준이라면 설사 총리에 부임한들 리더십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차기 총리는 노동·공공 등 4대 개혁의 전면에 나서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온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치 정략에 따라 운영되는 청문회라면 이는 증오와 정치 보복을 되풀이할 뿐이다. 정치가 인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등장을 차단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무난할 것이라던 이완구 후보가 저런 지경이다. 총리할 인물이 없다는 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