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성 MG손해보험 사장이 지난달 24일 눈덮인 속리산을 오르고 있다.
김상성 MG손해보험 사장이 지난달 24일 눈덮인 속리산을 오르고 있다.
2003년 3월. 삼성화재 상무 한 명이 회사를 떠났다. 24년간 열정을 쏟아부었던 회사를 떠나자 허탈함과 공허함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밀려왔다. 김상성 MG손해보험 사장(58) 얘기다. 김 사장은 그해 4월부터 산을 찾았다.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술을 마시며 넋두리하는 것도 지겨워질 즈음이었다.

김 사장은 산에서 안식을 얻었다. “숨이 꽉 찰 때까지 산길을 오르다 보니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풀려나가더군요. 정상에서 2000원짜리 막걸리 한 잔을 마시니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그때 산과 맺은 인연으로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산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이후 전국의 이름난 산은 물론 어지간한 산을 모두 밟아봤다.

지난 7일에는 신규 임원 및 신입 사원 35명과 함께 전북 덕유산에 올랐다. 김 사장은 이들을 정상인 향적봉까지 이끌었다. “앞으로 회사는 여러분이 짊어지고 나가야 한다며 자신 있게 뭐든지 해보자고 의욕을 불어넣어줬죠. 다 함께 함성을 지르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산을 찾으며 특별한 선물을 받기도 했다. ‘진인사대천명(사람의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붓글씨 액자다. 철학자였던 고(故) 안병욱 교수로부터 받은 것이다. 김 사장과 안 교수는 집 근처 아차산을 오르내리다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분을 쌓았다. 대학생 시절 안 교수 강의를 ‘도강’했을 만큼 큰 영향을 받았던 김 사장에게 잊지 못할 선물이었다. 김 사장의 좌우명은 그래서 진인사대천명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산을 오르는 것처럼 김 사장의 인생도 평탄치 않았다. 명지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조그마한 무역중개 회사에 다니다 1년여 만에 그만뒀다. 동양화재(현 메리츠화재)에 영업본부장으로 스카우트됐지만 여기서도 1년을 버티지 못했다. 그는 “굴곡진 인생이 고달픈 적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살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됐다”며 “인생도 힘들어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정상에 오르는 등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등산하면서 경영 구상을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나 결정한 일을 추진할 때는 산을 찾으며 생각을 정리한다는 설명이다. MG손해보험은 새마을금고가 1947년 설립된 국제손해재보험을 모태로 한 그린손해보험을 인수한 뒤 2013년 세운 회사다. 아직 내세울 만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지는 못했고, 흑자전환까지 3~5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성장 가능성은 어느 회사보다 크다는 게 김 사장 생각이다.

그는 “올해 매출 목표를 1조원으로 잡았는데 10월 안에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등반에 올랐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