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대 정유사인 에쓰오일이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와 해외 시장 공동 개척 등 협력을 확대한다. 정유·석유화학 사업 분야에서 시너지를 높여 실적 부진을 타개하려는 조치다.
'실적 부진' 에쓰오일 지원 나선 아람코
에쓰오일(대표 나세르 알 마하셔)은 아람코 자회사인 석유제품 트레이딩 업체인 ATC와 1조2000억원 규모의 경유 및 나프타 판매 계약을 맺었다고 9일 발표했다. 이번 계약으로 에쓰오일은 각각 1400만배럴의 경유와 경질 나프타를 연말까지 ATC에 공급하게 된다.

지난해 매출(28조5576억원)의 4.2%에 달하는 규모로, 1991년 아람코가 에쓰오일(당시 쌍용정유) 지분 35%를 인수한 이후 에쓰오일로부터 석유제품을 대규모로 구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쓰오일은 ATC로부터 2000억원 규모의 파라자일렌(PX) 12만과 중질 나프타 200만배럴을 공급받기로 했다. 올해 정기 보수로 인해 생산이 줄어드는 파라자일렌과 중질 나프타를 아람코에서 매입해 거래처에 공급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계약은 아람코가 경영난에 빠진 에쓰오일을 지원하는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월 한진에너지 보유 지분 28.41%를 1조9830억원에 사들여 지분율을 63.41%로 높인 아람코가 대주주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에쓰오일은 국제 유가 급락 탓에 지난해 258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 34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 결산을 하게 된 데다 올 들어서도 석유제품의 글로벌 공급 과잉 등으로 정제마진 회복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람코도 그동안 에쓰오일 지원 의사를 공식화했다. 칼리드 알 팔리 아람코 총재는 지난해 7월 한진그룹과 보유 지분 매입 계약을 맺고 난 뒤 “에쓰오일의 성장을 위해 아람코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ATC의 에쓰오일 석유제품 구매 규모가 커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에쓰오일이 아람코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시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에쓰오일은 도입 원유의 90%가량을 대주주인 아람코에 의존했으나 정제 과정을 거친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이나 프로필렌 파라자일렌 등 석유화학 제품은 독자적으로 국내외 시장에 공급해왔다.

에쓰오일 고위 관계자는 “정유·석유화학 사업 분야에서 양측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사업 협력이 더욱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해외시장을 확장하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이 울산 온산공단에 대규모 석유화학 생산시설 건설에 나선 것도 아람코와의 협력 확대를 위한 포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올해로 취임 4년째에 접어든 나세르 알 마하셔 에쓰오일 사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역사의 이정표가 될 사업’으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에쓰오일은 5조원가량을 투자해 2017년까지 중질유 분해시설과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공장을 조만간 착공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값싼 벙커C유에서 합성수지 등의 원료인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제품과 휘발유를 생산한다. 2011년 온산공단에 세계 최대 규모의 파라자일렌 공장을 가동한 뒤 3년 만의 대규모 투자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