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법인명 아프로파이낸셜대부)와 관계사들의 여신은 2조7000억여원이다. 이 중 지난해 2000억원가량의 부실이 생겼다.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원리금을 제때 갚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이들 중 금액 기준으로 절반가량(895억원)이 법원으로 달려갔다는 점이다. 빚을 깎아달라며 개인회생을 신청한 것. 법원은 이 중 325억원을 탕감해줬다.

저축은행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도 비슷하다. 지난해 발생한 부실채권의 60%가량이 법원 개인회생으로 인한 채무조정 채권이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법원이 ‘갚지 않아도 된다’며 탕감해줬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개인회생으로 인한 재조정채권 잔액은 매년 증가 추세”라며 “수익성과 건전성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 금융회사, 개인회생으로 휘청

개인회생 신청 건수가 지난해 사상 최대(11만707건)를 기록하면서 금융회사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금융회사는 법원이 개인회생 신청자의 빚을 깎아주면 고스란히 손해를 보게 된다.

은행보다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타격이 크다. 제2금융권을 이용하는 사람이 개인회생을 더 많이 신청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국내 은행은 개인회생에 따라 총 5388억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추산됐다. 제2금융권(카드·캐피털사, 저축은행, 대부업체)은 이 규모가 1조7612억원에 이른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제2금융권 가운데선 카드사의 빚 탕감 규모가 가장 크다. 신한·KB국민·삼성·현대 등 상위 4개 카드사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지난해 탕감해준 빚만 4129억원으로 집계됐다. 카드업계 전체로는 8317억원의 채권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금융회사들은 법원이 개인회생 인가를 결정한 채권을 통상 ‘회수의문’이나 ‘추정손실’로 분류하고 충당금을 쌓는다. 추정손실은 채권액의 100%를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을 더한 고정이하여신 잔액은 카드사의 경우 2011년 말 8760억원에서 지난해 9월 말에는 1조746억원으로 불어났다. 충당금은 금융회사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다.

카드사는 그나마 제2금융권 가운데 덩치가 가장 커서 버틸 만하다.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는 사정이 다르다. 개인회생으로 인해 회사가 휘청일 정도라는 게 업계 얘기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보통 연체가 발생하면 신용정보업체 등에 원금의 80~90%를 받고 채권을 매각해 손실을 줄였지만 법원의 개인회생에 들어가면 절반 정도밖에 건질 수 없다”고 말했다.

“저신용등급 돈빌리기 어려워져”

금융회사들은 개인회생에 들어가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아예 꺼리고 있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신용등급 7~10등급 가운데 금융회사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은 2013년 말 293만여명에서 지난해 말 278만여명으로 줄었다.

개인별로 신용등급 자체가 상승한 경우도 있지만 개인회생을 우려해 7~10등급에 대한 대출을 꺼리는 금융회사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대부업체의 경우 대출잔액 기준 7~10등급 비중이 2012년 말 85.0%에서 지난해 6월 말 77.7%로 줄었다.

개인회생에 따라 채권자로서의 권익을 침해당하는 금융회사들은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규모나 만기를 줄이고, 대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회생을 악용하는 일부 사람으로 인해 선의의 금융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요구에 따라 일반 상품보다 금리가 낮은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늘려야 하지만 개인회생 채권이 늘면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규/이지훈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