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와 민속자료관에 재현한 게이샤 마쓰에의 방.
유자와 민속자료관에 재현한 게이샤 마쓰에의 방.
1968년 일본에 첫 노벨문학상을 안긴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소설《설국》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 중 가장 아름다운 첫 문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문장은 작품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유명하다. 《설국》은 처음부터 장편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1935년 단편 《저녁 풍경의 거울》을 시작으로 1947년 완성된 작품이다. 《설국》 발표 80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설국 문학기행’에 동행해 니가타현 에치고 유자와로 떠났다.

도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가량 달리면 군마현과 니가타현을 가르는 에치고 산맥을 만난다. 이 밑을 통과하는 간에쓰 터널은 길이가 11㎞에 달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국경의 긴 터널’은 가장 먼저 개통된 시미즈 터널이다. 산맥 밑을 뚫고 나오면 눈의 나라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가와바타는 1934년 유자와에 있는 다카한 료칸에서 머물며 게이샤 마쓰에(본명 고다카 기쿠)의 정성스런 대접을 받고 작품을 썼다. 이 게이샤가 소설 속 여주인공 고마코의 모델이다.

일본은 콘텐츠 강국으로 불린다. 아무리 작은 시골 마을이라 해도 그 고장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관광객을 부른다. 사람들이 유자와를 찾기 시작한 것은 온천이 발견된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온천에서 요양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던 마을은 1930년대 기차가 개통되고 스키가 보급되며 다시 한번 인기를 끌었다.

《설국》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곳은 가와바타의 흔적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제3의 전성기를 맞았다. 유자와는 노벨문학상이라는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일본에서 손꼽히는 콘텐츠 마을이 됐다. 덕분에 가와바타가 묵었던 다카한 료칸에는 이곳에 묵지 않더라도 료칸 내 문학관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기 관광지인데도 마을은 약간 촌스럽고 한적한데, 그런 분위기마저 매력적이다. 설국문학기행 해설을 맡은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일본은 어떤 콘텐츠가 새로 나오면 기존의 것을 버리지 않고 계속 덧붙여 간다”며 “그런데도 억지로 대형화시켜 시설을 늘리거나 낭비하지 않고 마을 규모에 맞춰 유지하는 것이 유자와 마을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속 터널 앞엔 설국답게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곳은 ‘설국’이라는 스토리가 없었으면 그저 긴 터널에 불과했을 것이다. 유자와는 수십년, 수백년이 지나도 이야기와 콘텐츠에는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유자와마치=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