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직접 붓글씨로 써서 집무실 벽에 걸어놓은 휘호 ‘염천하위공(念天下爲公·공무를 수행하는 데 사사로움이 없도록 한다)’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직접 붓글씨로 써서 집무실 벽에 걸어놓은 휘호 ‘염천하위공(念天下爲公·공무를 수행하는 데 사사로움이 없도록 한다)’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지난달 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12층에 있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집무실. ‘염천하위공(念天下爲公)’이라는 서예 작품이 벽에 걸려 있다. ‘공무를 수행하는 데 사사로움이 없도록 한다’는 뜻으로, 정 장관이 직접 쓴 붓글씨다. 집무실 안쪽에도 ‘천도무친(天道無親)’이라는 휘호가 걸려 있다. 하늘의 뜻은 편애하는 일이 없이 언제나 착한 사람 편에 선다는 뜻으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정 장관은 “이 휘호는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일할 때마다 항상 이 글귀를 마음에 새긴다”고 말했다.

그는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한학과 서예에 조예가 깊다. 국내 대표적인 헌법학자로 잘 알려진 정 장관은 인터뷰 내내 ‘헌법’과 ‘원칙’을 언급했다. 최근 주민세 인상 논란과 관련, 그는 “주민세 인상은 지방자치단체의 숙원사업이고 인상이 필요한데도 야당이 동의해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법학 교수로 근무할 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헌법도 실천적 이론입니다. 행자부의 목표인 국가 개혁도 제가 평생 연구한 것입니다. 다만 현장 실무는 구체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 많아서 현장을 다니며 직접 확인하고 있습니다.”

[월요인터뷰] 정종섭 장관 "국민에 도달 못하는 행정서비스…중간 전달체계 고치겠다"
▷최근 주민세 인상이 무산됐는데요.

“주민세 인상은 원래 지자체장이 앞장서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주민세를 연간 1만원을 걷어도 되지만 지자체가 평균 4000원 정도만 받고 있습니다. 지자체는 그동안 주민세를 최소 1만원 이상으로 올릴 수 있도록 지방세법을 개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해 왔습니다. 지자체의 숙원사업인 주민세 인상은 지난해부터 여야가 논의를 계속했는데 야당에서 동의해주지 않아 정부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지자체장들이 주민세를 1만원까지 올리려는 자구노력을 먼저 해야 합니다.”

▷책임읍면동제와 대동제에 대해 지자체 반발이 거셉니다.

“지자체의 반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청 인력이 단지 동으로 재배치되는 것입니다. 구청이 갖고 있던 권한을 동으로 넘기는 책임읍면동제가 시행되면 현장에서 주민을 위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동사무소마다 동장 한 명과 주무관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휴가를 가면 업무 공백이 생깁니다. 대동제는 소규모 동을 몇 개의 동으로 묶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업무 공백을 막을 수 있고 효율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구청들은 권한을 뺏긴다고 봅니다.

“과거엔 지방자치를 민주정치 패러다임으로 봤습니다. 1995년 지방자치 실시 이후 민주정치 패러다임은 성과를 이뤘습니다. 그동안 지방자치는 무조건 권한을 지자체가 가져가는 것으로만 봤습니다. 지금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을 나눠야 합니다. 지방자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합니다.”

▷어떤 패러다임으로 가야 합니까.

“일각에선 복지국가 패러다임을 내세우는데, 이는 유럽에서 이미 실패한 패러다임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국민행복 패러다임으로 가야 합니다. 국민이 행복해지는 지방자치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민에게 돌아가야 할 예산이 지방정부와 같은 중간 전달체계에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도 서비스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단순히 지방자치가 침해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주민 입장에서 행복한지가 중요할 뿐 지방자치가 침해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공무원의 소극 행정은 여전하지 않을까요.

“황찬현 감사원장이 공무원의 소극적인 행정을 비리에 준해 다스리겠다는 한국경제신문 보도(1월29일자 A1, 4면 참조)를 봤습니다. 이건 감사원이 천지개벽을 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규제개혁은 민주화 직후부터 큰 그림을 그리고 국가 프로젝트로 가야 했는데, 단순히 행정적 차원에서만 진행됐습니다. 지방자치의 하드웨어를 전부 뜯어고치고 소프트웨어도 동시에 개혁해야 합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행정 서비스가 중간 전달체계에서 빠져나가는 문제점을 개혁해야 합니다.”

▷지방 공기업 개혁도 언급했는데요.

“지금까지의 평가 제도로 지방 공기업을 평가하면 대부분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방 공기업 관련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은 평가 기준이 잘못됐다는 뜻입니다. 평가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정확한 평가 기준을 만든 뒤 제대로 진단해서 정상화가 필요하다면 지원하고, 그렇지 않다면 과감히 정리해 정리절차를 밟을 계획입니다. 어차피 10년 후면 청산될 지방 공기업이라면 당장 퇴출시키는 게 맞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방 공기업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오는 4월부터 진단에 들어가 가급적 빨리 진행해 연내에 조기 성과를 낼 것입니다.”

▷지방의회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최근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할 국가 사업과 공익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한 제주도의회 사례처럼 지방의회의 예산 심의권 남용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행자부가 나서서 이를 조사하고 제주도에 올해 예산을 재심의하거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중앙정부가 개입하면 지자체는 항상 지방자치를 침해한다고 하는데, 지방자치는 지자체가 권한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산권이든 입법권이든 ‘우리가 법을 만들었으니 개입하지 말라’는 태도는 과거 권위주의 문화의 잔재입니다.”

▷정부가 지자체 행정에 개입하겠다는 뜻입니까.

“지금으로선 정부가 조사하고 지자체에 권고하는 수준입니다. 지방의회는 지자체장이 견제할 수단도 마땅치 않습니다. 통제가 안 되는 문제가 드러날 경우 (중앙정부가) 개입하는 제도를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지방의원들은 유급보좌관제 도입을 요구합니다.

“지방의회 업무에 필요한 전문 보조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방의원 개개인에게 보좌관을 붙여주기보다는 의회 소속으로 전문인력을 배치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지방의회에 속한 인력을 충원하는 게 맞는 방향입니다.”

▷행자부 국장들의 재량근무가 화제가 됐습니다.

“대개 업무보고를 하면 국장들은 지난해 수립한 계획을 그대로 가져와 다시 보고합니다. 이런 방식의 행정이 국민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행자부가 혁신하기 위해선 국장 개개인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지난주 업무보고를 끝낸 뒤 국장들에게 무조건 사무실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독서든 여행이든 뭐든지 좋으니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습니다. 국장들이 이 기간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숙제도 없습니다. 1주일 동안 시간을 줄 테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습니다.”

▷재량근무가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저도 교수 시절 책만 계속 보다가 한 번은 해외로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넓은 세상을 접하니까 책에는 없는 많은 것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직접 자극을 받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달(1월) 초 한국경제신문에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가전전시회(CES)에 부장단을 대거 파견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젊은 공무원들에게도 여비를 줄 테니 해외로 나가서 경험하라고 할 계획입니다. 재량근무는 초임 과장급까지 확대할 예정입니다.”

■ 정종섭 장관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법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사회 개혁, 국가 철학 분야에 정통한 국내 최고 권위의 헌법학자로 꼽혔다. 헌법을 단지 학문이 아니라 생활규범이자 재판규범으로 인식토록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헌법 철학과 헌법 원리를 실현하는 국회·행정·사법 등 국가 개혁의 이론과 개혁안을 제시했고, 1990년대 초 특별검사제를 최초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1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정 장관은 이듬해인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내다 1992년 건국대 법대 교수로 임용됐고 1999년 서울대로 옮겨 법학부에서 헌법학을 강의했다.

그는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 특별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며 정부에 조언했다. 2012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1955년 경북 경주 출생 △경북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건국대 법학과 교수 △서울대 법학부 교수 △ 서울대 법과대학 학장

정리=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