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문학작가상·대산·현대문학상 잇단 수상
시대와 인간 잘 통찰하는 작가로 남고 싶어
‘뿌리 이야기’는 인간을 나무에 비유해 산업화와 개발로 인한 현대사회의 황폐함, 현대인의 뿌리 뽑힘을 그린 작품이다. 철거민, 입양아, 일본군 위안부 등 뿌리 뽑힌 나무처럼 자신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상문학상 심사를 맡은 문학평론가 김성곤 서울대 명예교수는 “생태주의적 시각으로 한국의 비극적 근대사를 잔잔하게 조명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마흔을 기점으로 수상의 축복을 받았다”며 옅게 웃은 김씨는 “다양한 상을 받은 다른 작가도 많기 때문에 상을 받는 일은 더 열심히 쓰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듬해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씨는 2005년 소설집《투견》(문학동네)을 시작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언뜻 그로테스크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당황하기 쉽다. 하지만 천천히 소설을 따라가면 작품 안에 인간의 연민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펴낸 소설집《국수》(창비)도 현대인의 고독과 우울,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누구나 지니고 있을 법한 고통을 그린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표제작 ‘국수’ 속 주인공은 어릴 적부터 새어머니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면서도 새어머니가 끓여준 국수를 기억하고 있다. 마음속 갈등을 겪던 주인공은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새어머니를 위해 직접 국수를 만든다.
이처럼 김씨의 작품 속엔 노인과 이와 갈등하는 젊은 세대, 여성 등이 자주 등장한다. 철학자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는《국수》의 발문에서 “김숨은 이 사회에서 뿌리 뽑힌 사람들을 다룬다”고 말했다.《국수》에서 시작한 뿌리 뽑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뿌리 이야기’에서 절정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저는 제 또래 세대보다 노인들에게 시선을 많이 둡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건강하게 연금 받으며 살면 문제가 없지만 병을 앓으면 문제가 되죠. 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그런 일들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편이에요.”
문단에서 드물게 사회복지학과(대전대)를 졸업한 김씨는 어릴 적엔 내성적이었다. 그는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노는 대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꼭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 대신 글을 쓰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연달아 상을 받으며 등단했지만 원고 청탁을 받지 못하는 힘겨운 시절이 시작됐다.
그는 자신의 글을 찾는 사람이 없어도 꾸준히 글을 썼다.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을 편안하게 하고 치유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습관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고 청탁을 받지 못하다 보니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디 가서 소설가라고 말을 못했죠. 그래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해 막연하지만 계속 써야 한다는 의무를 제 자신에게 주기도 한 것 같아요.”
김씨는 “갈수록 소설 쓰는 일이 즐겁다”며 “나이를 먹는 것이 작가에게 나쁘지 않고 도움이 되는 일 같다”고 말했다. 점점 나이를 먹어 팔순이 되더라도 뭔가를 쓰고 있는 사람, 젊은 작가들이 쓰지 못하는 깊고 넓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작은 소망이다. “소설가는 시대와 인간을 잘 통찰해야 해요. 아주 깊고 너그러운, 우아한 통찰력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면 좋겠습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