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어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책임총리라는 용어는 부정했지만 책임총리로서 권한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후보자는 며칠 전 총리 지명을 받고 나서 대통령에게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고도 했다. 의전총리, 대독총리가 되지 않겠다는 그의 소신에서 행정부의 위상 변화가 엿보인다.

이미 두 명의 부총리가 집권여당의 대표와 원내대표를 지낸 정치인들로 짜여진 마당이다. 총리 자리도 여당의 원내대표가 차지한 이번 인사는 여당 권력이 내각을 장악한 것과 진배 없다. 국내 정치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사실상 의원내각제적 내각이 구축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야당에서 총리 지명에 대한 호평(好評)이 이미 나오고 있고 야당 의원들이 청문회 참가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국회의원들의 동업자 의식이라는 면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이주영 씨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국회에 복귀한다고 한다. 의회와 정부의 ‘견제와 균형’은 찾아 볼 수가 없게 됐다.

외국과 비교해도 이미 터무니없이 과다한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들이다. 대통령 견제를 넘어 마구잡이 청문회로 대통령의 인사권을 차단하는 것은 다반사다. 국정감사에서 일방통행으로 호통치는 것은 나날의 일과처럼 인식된다. 대기업 CEO들을 이유도 없이 불러세우고 야단친다. 규제 입법은 이미 홍수를 이뤘다. 증세 법안을 통과시키고 나서 다시 그 법안을 소급하는 법안을 만든다고 야단이다. 모든 게 정치 논리요 표(票)퓰리즘과 연결돼 있다. 최근에는 사법부까지 개입·간섭하는 새로운 관행이 생기는 중이다.

그냥 정치인의 개인 자질 문제로 보기에는 심각성이 도를 넘고 있다. 이제 국회 권력을 견제할 세력은 청와대밖에 남아 있지 않다. 정치적 타협이 있을 뿐 국가와 정당 이념은 실종상태다. 더구나 구조적으로 지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대중 정치의 한계다. 사실상 의원내각제처럼 운영되기 시작한 정치적 지형의 결과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