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가 비정규직 대책과 통상임금, 정년 연장 등 노동 현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노사정위가 합의한 시한은 3월 말이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회장 직무대행),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 노·사·정 대표를 만나 현안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60세 이상부터 임금피크제 적용을"

비정규직 기간 연장보다 고용 보장에 초점을


노·사·정 대표, 노동시장 개혁 '同床三夢'…험로 예고
“노·사·정 대화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과거 국난의 시기에 노·사·정 대화로 많은 문제를 해결했고, 유익한 부분이 많습니다. 다만 그 결과가 근로자들에게만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합의는 없습니다. 상식선에서 해결해야죠.”

노·사·정 대화의 노동계 대표를 맡고 있는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동시장 구조 개혁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월급 100만원 남짓 받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삶을 끌어올리는 방향이어야지, 300만~400만원 받는 근로자들을 끌어내리는 하향 평준화는 상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노동조합에 ‘차별시정 신청 대리권’을 주겠다는 것은 늦었지만 환영한다고 했다. 이는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서도 임금·복지 등 차별 대우를 받았을 경우 노조가 근로자를 대신해 차별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하지만 정부안의 핵심 내용인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기간 연장(2년→4년)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2년을 4년으로 늘리면 정규직 전환이 늘 것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전환이 안 됐을 경우 두 번의 계약이면 8년이 지나갑니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라는 얘기죠. 따라서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용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계약기간 종료 후에는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사·정이 내년 ‘정년 60세 법제화’를 앞두고 최우선 논의 과제로 선정한 임금피크제에 대해 “60세 이상부터 적용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더라도 적용을 받는 근로자는 전체의 5% 정도입니다. 주로 대기업과 공공기관이죠. 50대 중반이면 근로자 입장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입니다. 60세 이후 임금을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시행 연령은 최대한 늦추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이중 구조 심화, 즉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는 노조의 책임도 일부 인정했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라는 일부 사업장에서는 억대의 고액 연봉을 받는 노동조합이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하청업체 근로자를 외면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도 노·사·정 논의 과정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죠.”

使 김영배 경총 부회장 "노동 유연성 확대로 비정규직 풀어야"

정규직 전환 문제 노사 자율에 맡겨야


노·사·정 대표, 노동시장 개혁 '同床三夢'…험로 예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70% 이상이 30명 미만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정규직으로 전환해도 큰 의미가 없는 기업이 많죠. 그러나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안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는 한 축인 사(使), 즉 경영계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김영배 부회장(회장 직무대행)은 “비정규직 문제는 규제가 아니라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정부는 최근 기간제(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무기간 제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내놨다. 기존 비정규직 보호법은 기간제 근로자의 근무기간이 2년을 넘으면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새 대책은 근무기간을 2년 채운 비정규직 근로자가 회사에 요청하면 계약 기간을 4년으로 늘리도록 하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근무기간이 2년 정도 되면 숙련도가 높아져 기업이 계속 고용할 필요성이 커지고 4년이 되면 새 사람을 쓰는 것보다 낫다는 점에서 정부안은 기존 비정규직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이런 강제적인 규제는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정부가 개입할 것이 아니라) 노사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간 이중 구조를 근본적으로 타개하는 길은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도한 고용 보호와 가만히 있어도 임금이 오르는 지나친 연공급제 때문에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으로 이전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노조가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급·성과급 중심으로 개편하는 데 반대해도 기업들은 속수무책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회장은 “국내 노동시장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이미 일하고 있는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 "노사정 논의 핵심은 새 일자리 창출"

각자 이익만 좇는 노사 모두 변해야 '윈-윈'


노·사·정 대표, 노동시장 개혁 '同床三夢'…험로 예고
지난 연말 노·사·정이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논의하자며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한 데는 직접 이해 당사자인 노동계나 경제계가 아니라 정부, 즉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컸다.

노동계나 경제계는 개별 현안에 대해 이해득실을 먼저 따지는 반면 고용부는 올해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는 획기적인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지난달 노·사·정 대표가 두 차례의 비공개 회동 후 큰 틀의 합의안을 냈을 때 ‘3월까지 해법 도출’이라는 시한을 정한 것은 이기권 고용부 장관의 고집이었다.

이 장관에게 노동시장 구조 개혁 논의에 임하는 자세를 묻자 돌아온 답은 ‘국민’이었다. “비정규직 대책, 임금체계 개편 등 개별 현안에 있어 노동계와 경제계를 설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최종 판단은 일자리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수많은 국민의 몫”이라는 논지다.

“현안에 있어 노사가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협상에서 아무리 큰 것을 얻어 자기 진영의 박수를 받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입장에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챙기려는 것으로 비쳐지면 더 큰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는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매년 임금을 올리고,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하청업체와 근로자들을 외면하는 자동차업계 노사를 보면서 국민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구체적으로 경제계에 대해서는 근로자를 비용으로 인식하는 행태를 지적했다. 특히 “고용 유연성 확보 차원이 아닌 비용 절감을 위한 비정규직 채용 관행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줄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비정규직 대책에 ‘3개월을 근무해도 퇴직금을 지급하고, 정규직 미전환 시 이직수당을 주라’는 내용은 그 연장선이다.

노동계에 대해서는 “근로자가 자신이 속한 기업을 부정하는 것은 곧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해 “당장의 이익을 생각해 제도 도입을 거부한다고 해서 정년 보장이 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당장 명예퇴직을 확대하고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승현/강현우 기자 argos@hankyung.com